[아.만.한] 23회 수치와 그래프들이 보여주지 않는 차드 이야기 _ 엄민아 인사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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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국가명 : 차드(Chad)

도시 : 은자메나(N'Djamena)

세부지명 :

분야 : 경험나눔

주제 : 사회

세부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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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너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은 '차드'라는 나라에 대해 아시나요?

이름도 생소한 차드에 문화인류학도인 엄민아님께서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문화인류학도의 관점에서 바라 본 차드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다같이 인터뷰 속으로 꼬고!! :D




안녕하세요 엄민아 인사이터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위치한 하제테페 대학교에서 인류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엄민아라고 합니다!



와우! 터키에서 인류학 공부를 하고 계시는군요! 그럼 아프리카에는 어떤 계기로 어떤 나라에 거주하시게 되었나요?


대학원 과정 수료를 위해 1년간 터키어를 배우고 있을 때,  같은 반 친구들 중 차드에서 온 아부바카르라는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방학이 다가와 다들 나름의 계획을 짜고 있는데, 아부바카르가 제게 “차드가 여행지로 인기 있는 나라는 아니지만, 인류학자로서는 네게 흥미로운 것들이 많을 거야. 이번 여름에 오지 않을래?”라고 제안 했어요. 마침 논문조사를 위한 워밍업이 필요했던 때라 차드를 현지조사 예행연습지로 삼기로 결정했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는 점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나를 차드로 초대해 준 아부바카르

ⓒ엄민아 인사이터



친구의 제안에 흔쾌히 응하셨군요! 거주하셨던 나라인 차드는 어떤 곳인가요?


‘차드’를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하면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는 표현입니다. 내전과 쿠데타가 완전히 종료된 지 벌써 7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말이죠. 아프리카 내에서는 정치 체제와 안보 측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데, 서구사회에는 여전히 ‘죽은 심장’이라 불리고 있으니 서구의 아프리카에 대한 언론의 편견과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지요.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하는 차드는 사방으로 리비야, 니제르, 나이지리아, 카메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수단을 접하고 있을 정도로 광활한 국토를 소유한 나라입니다. 국토의 절반은 사막, 나머지는 열대우림 또는 초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바나 기후가 지배적입니다. 과거 아랍인들과의 교역을 통해 아랍어와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통해 프랑스어와 기독교도 유입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렇듯이 민족구성도 매우 다양한데, 이러한 복잡한 사회구성에 불구하고 민족, 언어, 종교를 둘러싼 긴장감이나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 평화로운 곳이 바로 차드입니다.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 차드의 기후

ⓒ 엄민아 인사이터




지역별로 기후와 지형이 다른 모습이 정말 신기하네요! 차드에서 방문 또는 여행 했던 지역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인가요? 


수도 은자메나에서 차를 타고 40분 가량 가면 ‘가위Gawi’라는 작은 마을이 나옵니다. 차드에 유통되는 도자기의 70% 이상을 생산하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죠. 가위는 과거에는 사오(SAO) 왕국[1]의 수도로 기능하며 왕이 직접통치 하였을 정도로 힘이 있었지만, 프랑스가 식민지배기 모든 국왕들의 권한을 강제로 해제하고 프랑스식 중앙집권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그저 평범한 한 마을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날 프랑스는 차드에 민주주의 정치 체계가 자리잡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역별로 민족구성이 상당히 다른 차드 같은 국가에서 중앙에 특정 민족에 속한 단일 지도자를 두는 정치 시스템이 결코 더 민주주의적일 수는 없지요.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민족간의 불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고요.







한가로운 가위 마을 풍경과 마실 물을 대접해주신 마을 유지분

ⓒ 엄민아 인사이터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주민들은 저희가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곧장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자리에 앉으니 동네 아이들이 자연스레 집에 가 베개와 생수를 가지고 나오더군요. 차드의 어느 시골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손님대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한 햇빛과 높은 습도 탓에 짧은 이동으로도 쉬이 몸이 고단해지는 탓이지요. 

한국에서는 낯선 이들 앞에서 자리에 누워 쉬는 것이 무척 부끄러운 행동일 수 있지만 차드에서는 물을 마시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이번에는 마을 유지께서 지나가는 꼬마 아이에게 돈을 쥐어주시더니 무어라 말을 하셨습니다. 5분 뒤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슈퍼에서 사온 미란다 네 병이 들려있었죠. 우기에도 낮 기온이 35도 이상 올라가고 습도가 높은 차드에서 시원한 음료수는 진수성찬만큼이나 훌륭한 손님대접이 됩니다.



사오왕국의 성. 우기라 벽화가 대부분 지워져 있다.

ⓒ 엄민아 인사이터


가위 마을 한 가운데 규모는 작지만 풍채 있는 성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왕의 일가 친척이라는 지역 유지분과 박물관 관장님의 안내로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과거 왕족들의 사진뿐만 아니라 왕자와 공주의 이름과 서열이 상세히 적힌 계보도, 왕가에서 사용된 장신구들과 화폐들이 전시되어 있더라고요. 




가장 최근까지 생존했던 왕족의 사진

ⓒ 엄민아 인사이터



그 외에도 당시 왕국의 사람들의 일상을 추측해볼 수 있는 생활양식들도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벽을 가득 채운 멋진 벽화들이었습니다. 누가 그린 것이냐 물어보니 옛날부터 마을의 여인들이 해마다 우기가 끝나고 다같이 모여 새 벽화를 그리는 것이 일종의 의례이자, 왕족에 대한 존경의 의미라고 하더라고요.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여러 번 느낀 것이지만, 이들의 몸에는 정말이지 예술가의 기질이 잠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을 여성들이 손으로 그린 벽화들

ⓒ 엄민아 인사이터 




사람들이 나누는 담소 소리와 사원에서 기도시간에 울리는 에잔소리 외에는 어떤 소음도 존재하지 않던 평화로운 마을, 가위는 차드 친구들에게 조차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식민지배로 인해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 것 사라지게 되었는지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모든 것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왕족의 후손들과 마을사람들이 여전히 옛 왕국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심을 간직하며 성을 보존하려 애쓰는 데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가위에서 재밌는 추억들이 많이 있으시네요 :)

차드에서 거주하시면서 느낀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이고 가장 좋지 않은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다 보니 어떤 문화적인 요소를 보더라도 제가 살아온 사회의 풍경들과 비교를 하게 됩니다. 차드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차드의 가장 큰 특징은 가정 내에서 ‘남녀칠세부동석’이란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어렸을 적 저희 가족의 명절 풍경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겸상하는 법이 없었고, 차례가 끝나면 남자 친족들은 안방이나 거실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한편 집안의 여자들은 주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식사, 후식준비와 설거지로 분주했지요. 그러는 중에 시댁, 남편에 대한 뒷담화나 서로의 사는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했고요.


차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가정의 경우를 제외하곤 무슬림 인구가 지배적인 은자메나에서 대부분의 주택은 남녀의 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형태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마당에 있는 담이나 큰 나무를 기준으로 거실, 마당, 화장실, 침실이 남녀로 구분되고, 단 음식 준비는 전적으로 여성의 업무이기 때문에 주방은 여성 쪽 공간에 배치됩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저는 아랍어도, 프랑스어도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 짧은 대화를 나누더라도 무조건 통역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제 친구 아부바카르 뿐이었거든요. 그런데  아부바카르는 남자라 계속 저와 함께 있을 수가 없으니 답답한 거죠. 누나들이며 여자 사촌들이며 먼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계속 방문을 하는데, 저는 질문을 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고, 대답을 할 수도 없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였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이고, 친척인데 굳이 이렇게 불편하게 살 필요가 뭐 있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저는 여행을 할 때 그 지역 음식을 배우는 것이 취미인데, 아부바카르의 누나들에게서 차드 음식을 배우는 동안 여자들만의 공간에 익숙해지다 보니 불편한 것들이 희한하게 편안함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더우면 옷을 마음껏 벗어도 되고, 애써 조신한 척 할 필요도 없었어요. 배가 고프면 남자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자유롭게 먹을 것을 준비해 먹으면 그만이고요. 오늘날 한국사회를 생각하면 이 조차도 지나치게 보수적이라 여겨질 수 있지만, 이들이 종교적 실천과 전통적 규범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행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찾은 최선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사회는 편리함만 추구하다 우리 자신조차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어요. 




주방을 중심으로 모이는 여성들

ⓒ 엄민아 인사이터




▲ 여성들과 따로 식사를 하는 남성들

ⓒ 엄민아 인사이터



정말 남녀가 완전히 따로 생활하는 모습이 놀랍네요,

현지에서 생활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배움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으셨나요?


프랑스의 인류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인간의 소비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구별짓기”라는 개념을 사용했어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상위계급(또는 지배계급)은 하위계급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하위계급에 속한 이들이 쉽게 소비할 수 없는 문화적 취향과 선호를 수시로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가령 과거에는 오페라 같은 예술공연이나 카페에서 즐기는 티타임이 계급을 구분하는 소비문화였다면 오늘날에는 골프여행이나 외제차, 명품 등이 그 자리를 대신 하지요.

계급이라는 것은 군단 사회부터 인류 역사상 늘 존재했고, 차드에도 물론 지위와 부의 정도에 따른 계급차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차드사회가 던지는 한가지 메시지는 계급적 관계가 반드시 수직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은자메나에는 부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도 평범한 마을 안에 중산층 시민들과 벽을 맞대고 살아가고, 눈에 띄게 화려한 집이나 차를 소유하지도 않습니다. 외양을 통해 누군가의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것이 불가능 한 곳이 바로 차드입니다. 어쩌면 외국인들은 이런 사회가 오히려 불편할지도 모르지요. 적어도 수도에는 하나, 둘쯤 존재하기 마련인 고급 쇼핑센터나 식당도 은자메나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아, 그래서 차드의 관광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긴 합니다.


제가 차드에 있는 동안 크게 감동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친구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제게는 일종의 부끄러움과 문화충격을 동시에 안겨준 사건이었죠. 은자메나 외곽에 신설된 은자메나 대학교 제 2 캠퍼스에 방문한 날이었습니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는지, 곳곳에서 방학을 이용해 일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같이 간 친구 세 명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는 곳마다 인부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며 일일이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일하는 분들 중 한 분이 저희에게 캠퍼스 내부를 함께 돌며 일일이 설명까지 해주셨고, 잠겨있는 강의실이나 부대시설까지 모두 들어가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을 실감했죠. 심지어 동행한 친구들은 공무원, 교육자, 사업가 집안의 자제들로 정말 살면서 고생 한번 해보지 않고 자란 이들이었습니다. 빈부나 지위에 상관없이 타인을 존중하는 습관이 몸에 베어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죠.

이웃간에도 허물이 없습니다. 한번은 친구네 집에서 누나들과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꼬마 세 명이 그릇을 들고 대문을 들어섰습니다. 누나들 중 한 명이 그릇에 갖은 음식들을 채워주더군요. “혹시 친척이에요?”라고 물으니 아니랍니다. 집 앞에 있는 이슬람사원에서 쿠란 공부를 하기 위해 온 아이들인데, 따로 식사를 챙겨오지 못하니 근처에 있는 아무 집에나 들어가 먹을 것을 얻어가는 것이라 하더라고요.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무언가를 주고 받는 행위가 너무도 자연스러워 깜짝 놀랐습니다. 





▲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결혼 후 친정이나 여자형제의 집에서 공동육아를 한다.

ⓒ 엄민아 인사이터


차드의 집들은 한국과 같이 벽이나 울타리로 둘러 쌓여있지만 그건 내 집과 남의 집을 구분하는 단순한 구실에 불과합니다. 하루에도 열 명 가까이 되는 손님이 수시로 드나들며 안부를 묻고, 일을 거두고, 아이들을 돌봅니다. 왜 연락도 없어 왔느냐고, 손님이 어떻게 빈손으로 왔느냐고 불평하는 일도 없고요. 그러니까 차드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도움을 청하거나 무언가를 나누는 일에 구태여 큰 의미부여를 할 필요도 없고, 계산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죠. 차드에 있는 동안 제가 자란 옛 시골 풍경이 많이 그리웠습니다.



따뜻한 정이 느껴지네요. 혹시 차드에서 힘들었거나 아팠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계속 집밥만 먹다가 하루는 친구들이 손님대접 좀 해보겠다며 생선구이를 하는 식당에 절 데려갔어요. 강가에서 식탁 몇 개를 놓고 하는 포장마차 같은 곳이었는데, 향신료와 레몬즙, 생강가루를 발라 기름에 튀겨낸 그 맛이 기가 막혀 열심히 먹었지요. 

그런데 그날 탈이 났어요.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설사를 해댔고, 온 몸이 떨리고 열이 나는 것이 정말 눈알이 빙빙 돌더라고요. 순간 덜컥 겁이 났습니다. 말라리아에 감염된 건 아닐까 하고요. 최근 몇 년 동안에야 정부의 노력으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말라리아는 차드인들의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강가에서 생선을 먹을 적에 모기떼에 사정없이 뜯겼으니, 자연스레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죠.


다음 날은 하필 친구네 시골 마을을 방문하려던 참이었는데, 아침이 되어도 도저히 움직일 엄두가 나질 않더라고요. 친구에게 “정말 미안한데, 나는 시골에 안 가면 안될까?”하는 문자를 쓰고 지우길 몇 번이나 반복하다 결국은 다시 실신해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저를 깨우러 온 친구들은 제 상태를 보고 걱정이 태산이었죠. 괜히 안 먹던걸 먹여 탈이 나게 했다며 자책까지 했고요.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친구들을 보니 기운을 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열이 내린 걸 보니 말라리아는 아닌 게 확실한 것 같아서요.

일단은 함께 약국에 가서 지사제를 사먹고, 예정대로 시골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더 탈이 날까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시골에 도착했는데, 친구의 친척 어르신께서 소에서 갓 짜오신 우유를 건내셨어요. 친구들은 또 탈이 날 수 있다며 마시지 말라는데 전 이번 기회가 아님 또 언제 갓 짠 우유를 마셔보나 하는 생각에 두 컵이나 마셨죠. 따뜻한 것이 어찌나 고소하던지. 그리곤 거짓말처럼 기운을 차렸습니다.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분유 한 번 먹지 않고 소젖을 먹고 자란 덕에 지금 이렇게 키가 크고 건강하다고요. 그리곤 홍차에 레몬을 짜 넣고 마시니 속이 거짓말처럼 편안해지고 설사도 깨끗이 멈췄습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 이역만리에서 생선 한 번 잘못 먹었다가 죽는 건 아닌가 눈앞이 깜깜했는데, 다행이면서도 참 황당했지요. 하지만 이후에도 차드에서 생선은 절대 먹지 않았답니다.



 

시골의 움막집과 갓 짜낸 신선한 우유

ⓒ 엄민아 인사이터



전공인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차드의 현재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여태껏 차드가 가지고 있는 순수함이라던가 전통성을 찬양하듯 말했지만, 사실 차드인들은 발전과 변화에 목이 말라있습니다. 2003년부터 석유수출을 통해 단시간에 반짝 성장을 이뤄내기는 했지만, 국제적인 원유가격 하락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경을 중심으로 한 보코하람의 테러활동으로 GDP에서 석유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가축의 수출도 길이 막힌 상태입니다.

제가 차드에 도착하기 전 아부바카르가 “한국인 친구가 오는데, 어떤 걸 보여줘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그들은 “초라해 보이는 데는 보여주지 말고,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나 좋은 호텔 같은데 데리고 다녀.”라고 조언을 했답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야트막한 건물들과 흙으로 지어진 전통가옥들은 발전된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는 숨겨야 할 일종의 수치인 것이지요.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일상에서 보존하며 누리고 있는 아름다움들이 참으로 많은데도 말이죠.




▲ 도착한 첫날 친구들이 데려간 은자메나의 최고급 호텔. 

ⓒ 엄민아 인사이터



대학을 졸업하고 국제개발협력 NGO에서 근무를 했는데, 그때 동료들과 늘 고민하고 목표로 삼았던 것이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차드의 현실을 보니, 선진국이 그들에게 강조하는 ‘개발’ 또는 ‘성장’이란 화두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사회와 전통이 소유한 가치들을 뭔가 뒤떨어진 것처럼 느끼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수치심까지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류학자를 비롯한 다양한 학자들이나 여행자들은 마치 아프리카의 삶을 통해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재발견한 듯이 말하곤 합니다. 가령 순수함, 대자연, 야생성, 낙원, 여유롭고 낙천적인 사람들은 아프리카 여행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감상들이지요. 그리고는 ‘우리는 저 때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들만은 전통 속에 남아있길’ 바라는 기대도 은근히 내비칩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낭만화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그들의 삶은 이방인들의 눈에 비치는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불안하고, 변화무쌍하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아프리카를 그대로 보기보다는 그곳에서 우리에게 없는 것들만을 찾아 다니는지도 모릅니다.



인류학을 하는 이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 방식대로 살게 내버려두자.”라고 하는 것이 지나친 방관이라 비판합니다. 문화상대주의가 비서구사회의 기술, 경제상의 후진성을 정당화시키며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생활의 향상과 기술의 진보를 열망하는 비서구사회의 사람들을 저지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차드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모두 은자메나가 한 나라의 ‘수도답게’ 좀더 세련되길 원했습니다. 전기도 끊기지 않고, 비가 와도 도로가 침수되지 않고, 적어도 정부를 대표하는 건물들은 나름의 위엄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지요.


▲ 높은 건물도 찾아볼 수 없고, 우기가 찾아오면 여지없이 침수되는 은자메나의 도로

ⓒ 엄민아 인사이터 



제 견해로는 차드인들이 느끼는 무기력함이나 발전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의 감정의 원인은 전지구적 불평등보다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발전’이라는 패러다임이 너무나 서구적인 모양새로 각인되고 표준화되어 버렸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차드인 본인들조차 차드 만의 색깔과 역사성을 가진 멋진 건축물들을 놔두고 더 높고, 더 깔끔한 현대적 건물만을 선망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무조건적으로 서구나 아랍국가들과 타협하거나, 원조를 받는 일에 인색할 정도로 신중한 차드의 이드리스 데비 대통령의 태도는 존경할 만 합니다.




차드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요소들로 디자인 된 은자메나의 독립광장

ⓒ 엄민아 인사이터



저는 국제개발협력분야에 종사한 후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어서인지, 어떻게 하면 인류학을 더 나은 개발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까를 자연스레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인류학은 각각의 인간사회와 문화들에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부여하는 보존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현대의 개발 개념과는 상치됩니다. 결국 제 고민은 각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와 가치체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현안을 찾는 일입니다.

차드가 꾸준히 성장해가되 한국과는 달리 자신들의 것을 지켜가며 미래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차드만의 매력을 지켜가며 미래에는 차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고 예상하시나요?


차드라는 나라도 결국은 점차 서구화되고 자본주의 국가의 면모를 띠게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그 양상이 타국가들과는 조금 다른 식으로 전개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차드에서는 현대적인 정치 체제를 갖춘 오늘날에도 전통적인 가치와 관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기준으로 삼아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관찰되곤 합니다. 가령, 수도 은자메나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주민들간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고 합시다. 한국이라면 이런 일은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가지도 않겠지만, 차드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마을을 찾아 당사자들을 화해시킵니다. 일례로, 지난 해 한 8월 차드 북부지역에서 금을 채석하던 여러 마을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데비 대통령은 7명의 장관들을 대동하여 곧장 현지로 갔고, 각 마을의 이장들, 유가족들을 만나 국가재정으로 손해배상을 하고 당사자들을 화해시켰습니다.


교통사고나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사법기관에 사건이 접수되면, 정부는 법에 근거한 처벌, 손해배상 방식을 고려하기보다 당사자들이 어떤 관계에 있고, 어떤 부족에 속해있는지, 종교는 무엇인지, 생계양식과 경제 수준은 어떠한지를 고려하여 합의를 제안합니다.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해온 차드에서는 살인이 발생했을 경우 피의자의 가족들이 피해자와 비슷한 연령대의 가족구성원을 피해자 가족에게 바쳐야 하고, 기타 범죄에 대해서는 가축으로 보상하였습니다. 당사자들이 모두 무슬림일 경우에는 이슬람법에 근거하여 결정하기도 합니다. 현재 차드의 사법기관은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러한 전통적인 피해보상과 처벌의 방식들이 재판에 그대로 활용한다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한편, 문화적으로는 이전에도 언급하였듯이 부에 대한 관념도 매우 다릅니다. 이는 종교적 영향이 크다고 보는데, 차드에서 부의 과시는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 중 하나이며, 때문에 부자들은 소비나 관광행위를 위해 카메룬이나 수단 등 인근 국가로 떠납니다. 이 때문에 주변국가들에서는 “차드 사람들은 모두 부자”라는 편견이 있기도 하답니다.

그리고 약자를 부양하고, 재산을 나누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데에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차드에 있는 동안 사람들이 수시로 연회를 열어 가족과 이웃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집안에 아픈 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가 생기면 모든 일가친척이 모여 회의를 열고, 함께 힘을 보태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매우 적극적입니다.



▲ 수시로 모여 마을의 현안을 공유하는 유지들

ⓒ 엄민아 인사이터




차드에는 시위문화도 거의 존재하지 않고, 언론도 발달되지 못해 어찌 보면 상당히 폐쇄되고 비민주적인 나라라는 인상을 주지만, 사람들의 일상세계를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회의와 토론을 거쳐 합의를 도출해내는 방식으로 이뤄지니 오히려 중앙집권화된 정부 기관에 의존하는 서구인들의 삶보다 유연하고 민주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차드와 같이 척박한 환경에 다양한 부족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생존과 발전을 위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구성원들간의 우호적인 관계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니 정부차원에서도 민간차원에서도 사람들간의 관계가 상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차드는 식민지배와 전쟁, 쿠데타, 자연재해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어오면서도 공동체성을 잃지 않아왔으니 앞으로도 그 가치를 잃지 않고 변화 속에서 균형을 유지해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민아님을 통해 차드의 앞으로가 매우 기대됩니다 :)

마지막으로 민아님과 같이 아프리카 지역과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가고 싶어 하시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아프리카를 여행하실 때 인류학적인 여행을 한번 시도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이제 한국인들에게 아프리카 여행이나 사파리투어, 휴양지에서 보내는 황금휴가 같은 것들은 꿈이라 여겨질 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기회들은 좀 더 나중에 누려보기로 하고, 먼저 아프리카의 일상세계에 침투해보길 시도해보는 거죠. 현지인들의 가정에 머물며 음식 먹고 대화와 경험들을 나누다 보면 어느 샌가 나와 상대가 흑인 대 백인, 현지인 대 여행자, 혹은 한국인 대 (가령) 차드인이 아니라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예요. 그 기분, 정말 좋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과 홀딱 벗고 마주앉아 있는데도 전혀 민망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인류학에서는 현재조사를 하는 연구자와 현지인 사이에 형성되는 신뢰와 친애의 감정을 ‘라포(rapport)’라고 하는데요, 라포 형성은 자기 스스로 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 고정관념 등을 깨뜨렸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됩니다. 이 라포라는 것이 일단 생기고 나면 상대는 내게 100 이상의 것을 나눠주려 노력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더 많은 것을 경험할 기회가 생기겠죠.

그런 식으로 현지인들과 친목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는 모든 것들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될 것입니다. 그것들이 더 이상  ‘그들의’ 무언가가 아니라 ‘내 친구와 관련된’ 무언가로 여겨지기 때문이죠. 저로서는 2010년 에티오피아 여행 당시에 맺었던 깊은 관계가 아프리카 사회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문화인류학도가 되어 그들의 문화와 삶을 공부하게 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른 분들도 인류학자들처럼 현지인들과 라포를 형성해가며 탐험하듯이, 연구하듯이 아프리카를 만나보시길 기대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본 인터뷰는 <아프리카를 만난 한국인 이야기> 기획 시리즈로

아프리카의 다양한 국가를 경험한 한국인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지원 부탁드립니다. 



<아프리카를 만난 한국인 이야기> 인터뷰 지원하기 : http://bit.ly/1K7MKU5




[1] SAO 왕국은 여전히 차드인들의 자부심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이를 보여주는 한 예로 차드의 모든 스포츠 국가대표팀의 공식명칭이 SAO 입니다. 

차드, 은자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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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혜주
17.02.14 11:50

이렇게 인사이터 님 통해 차드를 다시볼 수 있게 되서 좋아요! 차드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차드 이야기가 있을까? 했는데 ㅠㅜ 고맙습니다. 가위마을을 못보고 돌아온게 아쉬워서, 저는 가위마을을 보러 다시 차드에 가야할까 봐요~ 사람이 아름다운 곳 차드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