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한] 24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 모잠비크 현지에서 수행하는 개발협력 사업 _ 유승아 인사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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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국가명 : 모잠비크(Mozambique)

도시 : 기타

세부지명 :

분야 : 경험나눔

주제 : 국제개발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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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해외봉사활동으로 모잠비크를 다녀오신 유승아 인사이터님 :)

지역학과 개발협력의 관점에서 바라 본 모잠비크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럼 유승아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안녕하세요 유승아님 :)  유승아님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에티오피아 인구/보건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유승아라고 합니다.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개발협력을 전공했고, 올해 6월 중국의 푸단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맡고 있는 업무는 에티오피아의 적정출산율 달성을 목표로 하는 인구 및 생식개선 캠페인 지원 사업입니다. 현지의 보건관련 공무원 및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인구 정책과 관련된 연수를 진행하거나 정책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미디어 활용사례를 공유하는 연수도 진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들이 실제적으로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주된 사업 내용입니다. 



 어떤 계기로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 거주하시게 되었나요?


저는 장기 해외봉사활동 프로그램으로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6개월간 거주하였습니다. 장기간 해외봉사를 다녀오는 것이 대학생활의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에 3학년을 마치고 2009년부터 2년간 휴학하며 모잠비크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뒤에서 더 자세히 소개를 하겠지만 저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모자보건과 에이즈에 관련되어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단기가 아닌 최소한 6개월이상의 중장기 프로그램을 찾고 있었고, 종교적 색채가 없는 기관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제가 원하는 분야와 기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은 국내에서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해외 NGO를 통해 장기간 봉사활동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모잠비크는 어떤 나라인가요?


모잠비크라는 나라는 저 역시도 프로젝트 지역이 정해졌을 때 처음 들어보게 된 생소한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모잠비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관광자원은 없는 탓에 상대적으로 친숙한 국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쪽으로 아름다운 해변가를 가지고 있으며 오랜 기간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 탓에 모잠비크 곳곳에서 유럽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배를 벗어나면서 개발계획에 실패 한 탓에 사회적 인프라가 많이 취약한 편입니다. 예를 들어 수도 제반 시설이나 도로 유지보수가 힘들어 도로 곳곳이 무너져내려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실제로 모잠비크는 아프리카 대륙을 통틀어 가장 빈곤한 나라에 손꼽히고 있으며, 특히 에이즈 감염률은 12%에 달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제가 있었던 무렵에만 해도 반정부 시위가 종종 일어났었는데 최근에는 정치적 상황이 많이 안정되면서 천연자원을 토대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모잠비크에서는 어느 도시에 거주하셨었나요?


제가 거주했던 곳은 ‘카탄디카’라고 하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수도인 마푸토에서 10시간정도 버스로 쉬지 않고 올라오면 짐바브웨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마니카’라는 주가 있는데, 제가 6개월간 거주했던 카탄디카는 이 마니카에서도 북쪽으로 3시간정도 더 들어가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카탄디카는 가장 가까운 대도시가 차로 3시간을 나가야 할 정도로 산간지역이기에 이웃도시와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잠비크에서 짐바브웨로 가거나 모잠비크에서 말라위로 가는 등 장거리 화물차 운전자들의 경유지처럼 여겨지던 곳이었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 숙박업에 종사하였습니다. 


모잠비크에 도착한 것은 2010년 5월이었는데, 5월의 모잠비크는 건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처음 아프리카를 생각하며 떠올렸던 뜨겁고 강렬한 느낌보다는 사방이 버석하게 마른 건초들을 보며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제가 살던 지역 대부분의 산과 밭은 화전을 일구려는 듯 불에 그을린 흔적들이 많이 보였고, 자라려다 그대로 말라비틀어진 황폐한 옥수수 밭을 보면서 ‘모잠비크의 기근이 생각보다 심각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 해가 강수량도 적어 주된 수원지였던 잠베지강의 바닥이 드러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프로젝트 시작과 동시에 마음 한 켠이 무거웠습니다. 누가 보아도 척박한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주민들을 보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프로젝트 지역이었던 카탄디카와 마니카주의 주도 치모요, 여행으로 떠난 남풀라

ⓒ 유승아 인사이터



모잠비크에 계실 때 여행했던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어디세요?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떠났던 남풀라(Nampula), 모잠비크 섬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남풀라는 탄자니아 국경과 가까운 주 인데 해변가랑 인접한 유명한 휴양지 입니다. 프로젝트가 예정보다 일찍 끝나게 되어 한 달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에 망설임 없이 떠나긴 했는데…


모잠비크 장거리버스 특성상 대부분의 버스는 새벽 2~3시에 출발합니다. 중부지역의 치모요 터미널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풀라로 가는 직행버스로 17시간이 걸리는 긴 일정이었습니다. 저도 예외 없이 새벽 3시쯤 버스에 올랐습니다. 하루 종일 버스에서 먹고 자고 다시 밤이 되어갈 쯤, 갑자기 버스가 길에 서더니 차가 고장 났다고 하더라고요. 엔진에 이상이 생겼다면서. 모잠비크는 교통수단 자체도 열악하지만 도로 같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시설이 좋은 버스를 타도 길바닥에 퍼지는 게 일상다반사입니다. 


여행하면서 익히 들어왔던 일인데도 제가 탄 버스가 그렇게 될 줄이야. 한 시간이면 고쳐지겠지, 라고 생각하기를 세 시간쯤 지났을까? 우리를 태우고 남풀라까지 갈 버스가 치모요에서 출발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새 버스는 제가 타고 온 만큼의 시간이 더 지나야 그곳에 도착해 다시 우리를 태우고 남풀라까지 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승객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주섬주섬 짐 보따리를 풀더니 돗자리와 베개 같은 것을 꺼내서 길바닥에 펼치기 시작했고 그대로 한두 명씩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당혹스러움이란.. 그때 처음 비박 아닌 비박을 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힘겹게 남풀라에 도착했습니다. 


남풀라에서는 모잠비크 섬까지 갈 수 있는 버스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일행이 있으면 샤파라고 하는 봉고차에 수화물비용까지 약간 얹어서 섬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랑 같이 갔던 친구들은 짐이 적어서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샤파를 빌려서 갔었습니다. 늦게 출발한 탓에 섬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정오가 지나가고 있었고, 섬에서 머물며 액티비티를 하려던 계획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망고도 사먹고 카페 옥상정원에 앉아 석양 지는 모습도 구경했습니다. 사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여행이었지만 모잠비크 섬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랍스터! 


해안가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려던 저와 일행들은 난데없이 랍스터를 떨이로 주겠다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팔뚝만한 랍스터가 그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한 마리에 5천원 정도였는데 근처 식당에 가져가면 요리를 해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두 마리를 몽땅 사 들고 요리를 맡겼는데 너무 맛있어서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 모잠비크 건축양식

ⓒ 유승아 인사이터



▲ 흥정해서 산 랍스터 요리 

ⓒ 유승아 인사이터



모잠비크에서 가장 힘들었거나 아팠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프로젝트 중반쯤, 모잠비크에 머물기 시작한지 두 달이 되어갈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그날도 늘 먹던 평범한 점심을 먹었는데 뭔가 느낌이 평소와 조금 달랐습니다. 왠지 이 점심을 먹으면 크게 탈이 날 것 같은 기분? 낯선 환경에서 신경이 예민해 진 걸 수도 있고, 우연히 그런 예감이 맞은 걸 수도 있지만 정말로 그날 저녁부터 크게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을 가야 하는데 의사소통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포르투갈어를 배우긴 했지만 병의 증세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유창하지는 않았고, 영어로 설명하면 의사가 알아 듣지를 못했습니다. 중간에서 설명을 도와주던 프로젝트 리더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처방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막연하게나마 덜 익은 고기를 먹고 발생한 장염이나 식중독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뿐. 손짓 발짓 해가며 약을 처방 받았지만 증세가 멎지 않아서 일주일 가량 고생을 했습니다. 그때 저를 더 놀라게 했던 것은 쌀에 대한 인식의 차이였습니다. 


한국사람인 저는 아프니까 당연히 죽을 먹으려 했는데, 프로젝트 리더가 너무나 단호하게 말리는 것이었습니다. 아플수록 시마 (아프리카의 주식- 옥수수가루를 물에 풀어 끓인 진 떡 같은 음식)를 먹어야 한다면서 쌀을 숨겨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쌀은 ‘영양가가 부족하고 훨씬 더 못사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 이라고 하는데 그 순간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첫째, 국제사회가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고자 보내는 쌀은 사실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들을 돕기 위해 보내지는 쌀, 그러나 그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 쌀의 존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니 국제사회의 원조가 과연 올바른 방식으로 수행되는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둘째, 원조식량인 쌀이 ‘빈곤층이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잡혀 있다는 말은 외부에서 보기엔 아주 미약하지만 어쨌든 경제 순환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조건적인 원조 보다는 건강한 경제 생태계로 자리잡아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올바른 방식의 원조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셋째, 아프리카로 가기 전에는 시마가 영양분이 없고 쌀이 더 좋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를 반대로 주장하는 이들을 보며 보편적 가치의 우선순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국제사회의 원조와 그 효과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대학원진학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ㅠ.ㅠ 그럼,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셨나요?

아프리카에 있었을 때 저의 주된 업무는 프로젝트 리더와 현지 기관의 직원들에게 질병과 보건위생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정기적으로 중고등학교에 방문해서 보건위생과 에이즈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피임방법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기뻤던 순간은, 카탄디카 지역의 프로젝트 목표 달성률이 1위를 기록했을 때였습니다.  



▲ 프로젝트 종료 후 사업 성과 발표회

ⓒ 유승아 인사이터



모잠비크에 도착하고 3개월이 지날 무렵, 위의 사건을 계기로 에이즈 환자들의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면서 환자들에게 지속적인 소득을 창출해주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커뮤니티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결국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어떤 식으로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에이즈환자 커뮤니티 방문

ⓒ 유승아 인사이터


그때부터 직원들과 함께 과일쨈을 만들어 시장에 판매, 소득을 창출하게 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워낙 작기도 했고, 대도시 마트에서 파는 쨈은 수입산이라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희소성이 있으면서도 만들기 쉽고 최대한 적은 자본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활동했던 기관에 최소한 예산을 요청했고 저에게 예산을 주면서도 반신반의하는 직원들과 함께 레몬쨈을 만들었습니다. 가난한 에이즈 환자들의 환경에 맞춰 숯으로 쨈을 만들었기에 장장 10시간만에 완성했지만 쨈이 완성됐을 때 모두가 얼싸안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 레몬쨈 만들기 

ⓒ 유승아 인사이터



직원들이 필드로 돌아가서 마을단위로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할 에이즈환자 커뮤니티를 함께 선정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다시 한번 쨈을 만들고, 간단하지만 경영학 수업시간에 배웠던 이론들을 떠올리며 시장의 상인에게 공급하는 과정까지 진행하니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우리 지역으로 와줘서 고맙다는 배웅을 받으며 행복하게 마을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모잠비크에 가시기 전에는 어떤 공부를 하셨었나요?


저는 대학교에서 중국어와 지역학을 전공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꽤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승아씨는 중국어를 전공했는데 아프리카를 다녀왔네요?” 입니다.


처음 아프리카로 해외봉사활동을 가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에는 전공에 상관없이 단순하게 ‘내가 남을 도울 활력이 있을 때 가치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너무 막연해서 어느 나라로 가고 싶은지, 어떤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지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역학 전공수업에서 중국의 도시개발 문제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무분별한 매혈로 인해 중국 시골지역의 에이즈 감염률이 확산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에이즈에 관한 문제를 조사하다가 무지에 의한 에이즈의 확산은 아프리카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습니다. 


전공심화 수업에서 중국과 아프리카의 정치적 개발과 협력에 대한 이슈를 분석하게 되면서 아프리카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중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는 동안 아프리카 친구들과 교류하며 중국과 아프리카를 함께 공부해야 하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듣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저에게는 나름 타당성 있는 수순이었던 셈입니다.


앞서 말한 지역학은 ‘각 지역의 언어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문화, 풍습 등 특정 지역에 대한 실제와 이론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언어는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전공 언어를 기반으로 자신이 공부하는 지역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 나갑니다. 프로젝트 지역이 모잠비크로 결정되면서 포르투갈어를 새롭게 배웠는데 언어적 한계성을 감안하고도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지역주민들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공부하신 지역학이나 개발협력의 관점에서 활동하신 모잠비크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얼마 전, 친한 동생이 근무하던 연구원에서 모잠비크 공무원대상으로 농업기술 관련 초청연수를 진행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 보니 모잠비크에 있었던 시절이 그리워져 최근 신문기사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결심했을 무렵인 2008년도 당시에는 중국의 공격적인 대아프리카 원조기금에 관한 비판이 큰 이슈였습니다. 중국정부 차원에서 진행했던 대규모 차관 공여에는 사실 아프리카의 자원확보 또는 무기수출, 중국인 이주와 같은 정치적 속내를 감춘 협력의 모습이었고,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으면서도 중국 정부는 그와 같은 의견들을 묵살한 채 여전히 그들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속 검은 유대’는 불과 몇 달 전 중국정부가 남중국해 분쟁을 둘러싼 갈등으로 동남아국가들과 대립할 때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로부터 중국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人民网 7/11])


조금 뜬금없지만 오래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나라 역시 그와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유/무상원조사업의 방향을 점검해 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이상 아프리카에 있지 않기 때문에 최근 상황이 어떤지 포털에 검색했더니 석유공사가 모잠비크에서 참여하고 있는 천연가스 개발사업이 성공적이라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같은 주제를 놓고 두 기사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했는데, 한 기사에서는 모잠비크 배관공사 착수를 위해 한국가스공사가 후원협력 하는 현지의 직업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이에 따라 지역 주민들의 삶의 변화를 기대한다는 내용이었고, 다른 기사에서는 가스공사가 모잠비크에서 확보한 천연가스를 국내가 아닌 해외에 되팔아 이득을 챙기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 다뤄졌습니다.


이처럼 국제개발이라는 분야는 국제관계와 그 이득에 관해서 빛과 그림자 같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더더욱 우리나라 원조의 방향성에 대해 재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한국과 모잠비크의 관계에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방식의 원조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대학생 시절 해외봉사를 통해 모잠비크 현지경험을 하시고, 대학원을 진학하셨는데요.

현장경험을 하는 것과 대학원 공부를 하는 것 중 어떤 것을 먼저 하는 것이 좋을까요?


제 주변을 비롯하여 국제개발협력 커뮤니티나 소모임에서 만나게 되는 학부생들이 빠지지 않고 하는 질문이 바로 이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처음 이 인터뷰를 준비할 때만 해도 ‘나는 현지경험을 쌓고 대학원에 입학한 케이스’니까 그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작성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글로 정리를 하다 보니 아프리카를 가기 전 이미 지역학이라는 학문을 어느 정도 배운 상태로 갔다는 걸 떠올리게 되어 제 스스로도 혼란스러웠습니다.  말하자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지역학이라는 공부를 먼저 하고 현장 경험을 쌓은’ 스토리 하나와, ‘현장 경험을 쌓고 대학원에서 개발학 공부를 한’ 또 다른 스토리로 나누어 스스로 판단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각각의 장단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부를 먼저 하고 현장경험을 쌓게 된다면, 아무래도 현지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 되어 있으니 적응기간이 짧아집니다. 현장에 나가기 전에 구체적으로 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수행 할 때의 진행 속도나 성과에 있어서 완성도가 높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프로젝트에서 큰 성취감을 갖고 귀국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와 같은 지역적 이해가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론적 차이와 현지에서 경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차이의 갭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론적 지식이 뒷받침 되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점이라면 아무래도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사람에 따라 현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대처하거나 받아들이게 되는 범위가 다를 수 밖에 없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중도포기하고 각자의 나라로 귀국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비록 지역학이라는 배경은 있었지만 아프리카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할 당시에는 개발학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산을 설정하고, 성과를 측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전적 지식이 없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대학원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니 그제서야 제가 현장에서 했던 것들이 말하자면 하나의 ‘파일럿 프로그램’이었고, 파일럿 프로그램을 토대로 본격적인 개발사업에 착수하기 위해서 거쳐야 할 작은 단계들, 말하자면 사전조사와, 프로젝트 목표를 설정하는 PDM (Project Design Matrix) 작성, 프로젝트 성과를 측정하기 위한 기초선 조사, 종료조사와 다양한 연구방법론에 대해 배울 때 보다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론적 지식을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면 현업에 적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한결 편하기 때문에 전공을 살려서 직업을 구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 다양한 해외봉사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유승아님은 해외봉사활동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D 


이 질문은 ‘영어를 못해도 해외 봉사활동 갈 수 있을까요’에 이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모잠비크에 다녀온 직후 후배들에게 들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소위 ‘스펙’을 위한 단기 해외봉사활동 프로그램도 많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경험 삼아 다녀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대학원에 진학해서 이런 단기 봉사활동 프로그램으로 태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었고, 정말 유익했기 때문에 주변에도 많이 추천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목표가 어느 정도 확고하다면 해외봉사에 대해 스스로 좀 더 진지하게 고려를 해 보았으면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대학교 1학년때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활동 경험을 쌓아 왔습니다. 국내 기관에서 주관하는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방과후 교육, 독거노인 가정방문, 환경단체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 대학생 NGO에서 활동하며 가장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봉사활동’이 나에게 잘 맞을 지 스스로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고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기관들의 업무 절차 프로세스도 궁금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봉사활동 경험과 상관없는 분야에서 경험을 쌓게 되었지만 그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했던 모든 과정을 거쳐왔기에 프로젝트 끝까지 최선을 다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봉사활동에 대한 본인의 뚜렷한 가치관이 있어야 중도 포기할 가능성도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위 문단의 다양한 활동들은 저만의 가치관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고, 그 덕분에 기관 선정 역시 저의 가치관과 상충되지 않는 선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봉사활동을 결심한 순간부터 현지에 도착하기까지, 심지어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심지어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도 오게 되는데 그럴 때일수록 자기의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줄 수 있는 ‘가치관’이야 말로 가장 철저하게 준비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유승아님과 같이 아프리카 지역과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가고 싶어 하시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아프리카에서 지내면서 ‘아프리카도 사람 사는 곳이다’라는 생각을 가장 자주했습니다. 아직 낯선 대륙임에는 분명하지만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만큼 다양한 이해의 충돌이 발생하고, 어떨 때는 우리가 다른 인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고가 일치하기도 합니다. 아프리카를 경험하고 싶다면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프리카도 그냥 ‘사람 사는 동네’ 입니다. 





ⓒ 유승아 인사이터




*본 인터뷰는 <아프리카를 만난 한국인 이야기> 기획 시리즈로

아프리카의 다양한 국가를 경험한 한국인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지원 부탁드립니다. 



<아프리카를 만난 한국인 이야기> 인터뷰 지원하기 : http://bit.ly/1K7MKU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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