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한] 25회 천 개의 언덕을 가진 살만한 르완다, 천 개의 추억을 가진 아만한 청년의 이야기 _ 이상혁 인사이터
1

2016.11.08

국가명 : 르완다(Rwanda)

도시 : 키갈리(Kigali)

세부지명 :

분야 : 경험나눔

주제 : 국제개발협력

세부주제 :

Icon sns fb
Icon sns blog
Icon sns mail


르완다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돌아오신 오늘의 인사이터님!

아인 여러분도 다함께 르완다의 매력 속으로 빠져 볼 준비 되셨나요?

그럼 인터뷰 속으로 꼬고!!!  :)



안녕하세요 이상혁씨. 자기소개와 현재 하고 계신 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무라호! 안녕하세요, 드디어 제 소개를 하게 되었네요! 저는 현재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에서 ODA YP로 일하고 있고, 르완다가 너무 그리워 그 새를 못 참고 ODA WATCH 시민현장감시단 일원으로 2주간 르완다를 다녀온 르빠(르완다 빠) 이상혁이라고 합니다. (귀국 후 르완다 재방문 최단기간 기록 보유자인 건 안 비밀이에요.)



르완다는 어떤 계기로 거주하시게 되었나요?


제 20대의 십일조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나라는 아직도 많은 지인들이 우간다로 착각하는 아프리카의 심장, ‘르완다(Rwanda)’입니다! 2014년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내 피를 끓게 하고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제 이름 ‘상혁(相赫): 내가 가진 것으로, 모두(相)다같이 빛날(赫)수 있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일차원적인 도움이 아닌 지속 가능한 개발, 수혜자가 후원자가 되고, 자립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을 해보고 싶어 KCOC NGO봉사단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2월 열매나눔인터내셔널 소속으로 1년간 르완다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거주하셨던 나라인 르완다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아프리카의 스위스’, ‘아프리카의 심장’, ‘천 개의 언덕을 가진 나라’


크기는 작지만 가진 별명은 많은 나라 르완다는 아프리카 대륙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크기는 우리나라 경상남북도 정도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별명처럼 끝없이 펼쳐진 풀이 무성한 고원과 천 개의 언덕이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나라, 입가에 시원하게 번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한 나라. 이것이 바로 제가 살았던 르완다의 진짜 모습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여전히 많은사람들이 르완다 하면 '르완다 제노사이드(genocide: 특정 집단 말살 목적으로 한 대량학살)' 또는 '호텔르완다'를 떠올리는 것같아요. 물론 르완다 대학살이 르완다에 백만 명의 무고한 사상자, 40만 명의 고아, 3백만 명의 난민과 수만 명의 에이즈 환자를 만들었고, 불 탄 건물, 황폐해진 땅을 남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르완다 사람들은 협력하여 경제를 일으켰고, 살아남은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사회 결속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르완다는 평화를 되찾았고 수도 키갈리는 청결함, 평화 및 안전 측면에서 인정을 받아 아프리카 도시 중 처음으로 주거 환경 영예 대상(Habitat Scroll of Honor)을 수상했고,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낮은 범죄율을 가진 나라’, ‘10년째 연평균 경제성장률 7%’, ‘세계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8위, 아프리카에서 2위’, ‘아프리카 최고의 공직청렴도’, ‘아프리카에서 치안이 가장 잘 보장되는 나라’ 라는 수식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르완다를 ‘내전을 겪은’ 상처와 아픔을 가진 나라가 아닌 ‘내전을 극복해낸’ 희망을 보는 나라로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르완다가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 또는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르완다에 있을 때 자주 든 생각은 예전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6-7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나라가 발전하던 때처럼 제가 처음 르완다에 갔던 2015년 2월과 르완다를 떠나던 2016년 2월 르완다 모습은 매우 달랐습니다. 

더불어 르완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공동체의식이 강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정이 흘러 넘칩니다. 또 흥도 아주 많구요.  :)


이렇게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르완다가 한국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르완다의 ‘시간 관념’인데요, ‘아프리칸 타임(African Time)’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아프리칸 타임은 사전으로 검색해보시면‘시간을 지키지 않음’이라는 뜻이 나올 정도로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약속 장소에 아예 나타나지 않는, 아프리카의 독특한 시간 문화인데요. 이는 시간을 과거와 현재로만 인식하고 미래에 대한 관념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간관념은 르완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약속시간 보다 한참 늦은 르완다 사람들에게 시간관념을 따지는 것은 매우 무의미한 일이에요. 미래의 약속시간보다 길 가던 중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가 더 중요하니까요. 저는 약속시간이 지나 6시간동안 기다려본 적이 있는데, 이정도 가지곤 한인들 사이에서 명함도 못 내밉니다. 최근 빠른 경제성장에 따라 복잡해진 비즈니스 관계로 젊은 층을 기점으로 시간 관념이 많이 변화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글쎄요.


그 외에도 르완다만의 특이한 주거, 교통 문화가 있는데요. 르완다에는 거의 모든 집에 ‘하우스 보이, 하우스 걸’이라 불리는 가정부들이 있습니다. 집이 크든 작든, 수입이 많은 적든 말이죠. 한 현지인 친구는 월급이 적어 끼니를 해결하기도 빠듯하다고 투정부리면서 집에는 가정부를 두고 있었습니다. 이걸 보면서, 속으로 ‘그냥 자기가 집안일 해서 그 돈이라도 아끼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문화는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하.


여러분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돈 내고 타보신 적 있나요? 운전기사 뒤 좌석에서 말이에요. 물론 르완다에도 대형버스, 마을버스가 있지만 르완다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이용한 대중교통은 바로 ’자전거와 오토바이’ 였습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기사 모두 정부 소속 정식 협동조합 조합원들이에요. 자전거는 보통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데 기본요금 100RWF, 원화로 150원이에요! 저는 늘 기본 200RWF을 내고 다녔답니다. (육중한 몸뚱아리)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전거 기사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답니다 ^^ 근데 지금 되게 슬프네요 ;) 



ⓒ 이상혁 인사이터



르완다에서 거주하시면서 느낀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이고, 안 좋았던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점을 나열하면 수십 가지도 넘지만, 가장 대표적인 몇 가지만 말씀 드릴게요!

첫째는 ‘쾌청한 날씨’입니다. 르완다는 나라전체가 해발 1,500M의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어 평균기온이 섭씨 19-20도 정도로 한국의 초가을 날씨입니다. 아프리카는 무조건 대머리 독수리가 날아다니는 땅이 쩍쩍 갈라진 사막일거라고 생각했던 저의 무지와 편견이 부끄러울 정도에요. 1년 동안 땀을 흘려 본 적은 손에 꼽고, 반팔보다 긴팔을 더 많이 입고 다녔다면 믿으실 수 있나요? 믿어주세요.


두 번째는, ‘내 몸보다 깨끗한 도로’입니다. 특히 수도 키갈리의 도로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답니다.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누가 먼저 도로의 쓰레기를 발견하나 내기를 했다면 믿으시겠어요? 이번에도 믿어주세요.


그리고 위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르완다는 참 안전한 나라인데요. SOS International에 따르면 르완다의 치안 등급이 한국과 동일합니다. 와우. 뭐 이해하기 쉽게 말씀 드리면, 한국처럼 모임 후 여자들도 밤늦게 알아서 귀가가 가능하다면 감이 오시죠?


네 번째는 바로 빠른 인터넷!! 사실 느리지 않다가 정확한 표현이긴 하지만 와이파이가 잡히는 카페도 많고, 우리나라의 KT가 들어와 있어 4G LTE가 가능한 나라랍니다. 대단하죠? 물론 한국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과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무엇보다 무한도전을 챙겨볼 수 있다는 건 축복 아닌 블레싱이죠.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에서 사는 인생의 낙이자 삶의 이유!!...까진 아니지만, 좋은 점이 바로 ‘커피’ 아니겠습니까!!! 또 커피로 유명한 르완다에서 1년이나 있었는데, 뭐 제가 더 설명할 필요가 있나요? 그래도 해드릴게요. 매일 아침 지저귀는 새 노랫소리에 깨어 눈비비고 일어나 한 줄기 햇살이 보이는 커튼을 젖히고, 드넓고 푸르른 초원을 바라보며 신선하고 향긋한 커피를 마시는 그 잠깐의 여유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건 르완다가 제게 준 큰 행복 중 하나였습니다. 아 그립다.


이처럼 르완다가 가진 좋은 점이 많지만, 정말 제 마음을 사로잡은 건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음, 따뜻한 성품과 그것이 피어내는 미소는 웃음을 잃고 바쁘게만 살아가는 한국에 오고 나서 더욱 생각이 나네요. 


안 좋았던 점이라기보다 불편했던 점이 있다면 한국과는 많이 다른 환경이었죠.

르완다는 아직 하수도 시설이 완벽히 갖추어져 있지 않고 수력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건기가 되면 단수와 단전을 빈번히 겪어야 했답니다. 처음에는 소리도 지르고, 겁이 나서 이불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연신 외쳐댔는데, 그것도 금방 익숙해지더라구요. 나중에는 어디에 있든 원래 물과 전기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는 제 모습이 무서워지더라구요.


하지만.. 르완다를 떠나는 날까지 익숙해질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크고 다양한 벌레친구들과 함께 한 집에서 서식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처음 살던 집에서는 검지만한 바퀴벌레 친구가 방 문을 열 때, 새벽에 화장실을 갈 때, 요리하러 부엌에 들어갈 때마다 배를 까뒤집고 저를 쳐다보고 있어서 늘 긴장하고 살았어요. 그래도 이사간 두 번째 집에는 이상할 정도로 바퀴벌레 친구가 없더라구요. 대신, 도마뱀 친구들이 엄청 많았답니다. 감이 오시나요? 맞아요 도마뱀 친구들이 집안에 있는 모든 벌레들을 다 먹어주었던 거에요! 처음에는 도마뱀이 더 무서웠는데 같이 살다 보니 집안 청소를 그렇게 열심히 할 수가 없더라구요. 여러분 도마뱀은 우리의 친구에요. 아주착한 친구요. 계속 보다 보면 귀엽기까지 하답니다? 



  

     

 

 

ⓒ 이상혁 인사이터  



현지에서 생활 하시면서 가장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어떤 건가요?


혼자 해외에서 거주해 본적도, 심지어 여행 한 번 해본 적 없던 제가 ‘1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살아내는’ 것은 매일 매일이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이고 배움의 연속이었어요.


먼저는 ‘쓴 뿌리’의 발견이었어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홀로 놓였을 때 드러나는 쓴 뿌리(진짜 모습) 말입니다. 처음에는 1년동안 르완다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사랑이 넘치는 ‘천사’같은 모습만 보일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면 속 진짜 얼굴을 드러내게 되었고, 그런 제 모습에 스스로 많이 실망하고 자책했었죠. 그럼에도 가시투성이인 저를 안아주고 변함없이 사랑해준 건 르완다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배움은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인데요. 한국에선 아주 당연시 여겼던 것들, (가령 마시고 씻을 물, 마음 놓고 큰 일을 볼 수 있는 화장실, 밤새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전기, 먹을게 떨어지면 슬리퍼 신고 다녀올 수 있는 슈퍼마켓…) 이곳에선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이 없었습니다.


의식주 생활이 불편하고 힘들어도 웃음이 많고 삶에 여유가 있던 르완다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행복의 기준을 재정립해가는 과정이었어요.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 가진 것은 없어도 더 많은 것을 가진 르완다 사람들을 통해 배운 것, 바로 행복은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르완다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했었던 순간은 언제셨어요?


사실 르완다에서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을 꼽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제가 한 주에 정말 정말 학수고대하던 요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목요일’이었습니다! 저는 매주 목요일 12시에 키갈리 공항 근처에 있는 2&5 School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쳤답니다! 학교 교장이신 선교사님께서 주신 수업의 기회는 제 ‘기도수첩’에 적은 첫 번째 기도제목이었답니다!! KCOC NGO봉사단으로서의 삶도 행복했지만, 봉사단이 아닌 초등학교 ‘춤 선생님’으로 지낸 삶은 행복에 감사를 갑절로 얹은 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처음 학교를 들어선 순간을 잊을 수가 없네요. 학교에 들어섰을 때, 달려와 와락 안기던 아이들을 보며 르완다에 와서 처음 느껴보는 사랑이 가득하고, 설명할 수 없는 감동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던 바로 그 순간.. 한 학기를 마치고 학부모님들을 모시고 강당에서 진행한 종업식 때, 그 동안 배운 춤을 추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는 정말 눈물이 나더라구요. 지금은 그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미소와 손짓을 볼 수 없지만, 그때 아이들이 제게 준 따뜻한 감정은 지금도 저를 미소 짓게 합니다. 




▲ 2&5 첫 수업 날
ⓒ 이상혁 인사이터



▲ 종업식 날
ⓒ 이상혁 인사이터


▲ 르완다를 떠나는 날 마지막 사진
ⓒ 이상혁 인사이터


현지에 가기 이전에는 어떤 일(공부)을 하고 계셨고, 현지에서는 어떤 일(공부)을 하셨나요?


르완다를 가기 전에는 한창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국제관계학과 4학년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르완다에서는 NGO 열매나눔인터내셔널 사업에 함께 했었는데요. 열매나눔은 COOPAG 협동조합에 속한 농가의 실질적인 소득증대를 지원하기 위해 협동조합의 “농산물 생산→보관 및 가공→유통 및 판매”에 이르는 포괄적인 농업 가치사슬 강화에 초점을 두고 세 가지의 세부 사업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바로, ‘농업기술 훈련 프로그램, 옥수수 창고 및 가공소 운영 프로그램, 프로젝트 운영 위원회 조직’인데요. 그곳에서 저는 몸에서 ‘발’과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사무실보다는 시장조사를 하며 곡물 물가변동, 물품 가격비교 등을 알아보고 구매하였고, 사업장 내 건물 건축이나 물품 구매를 위해 현지 업체나 정부기관에 방문하여 협상이나 회의를 진행하는 일을 주로 했던 것 같아요.  


 맡은 사업 외에도 다양한 일을 했었는데요. 한인교회 청년부 임원, 유초등부 교사도 했고, 위에도 말했듯이 현지 초등학교에서 춤을 가르치기도 했답니다! 개인 학습으로는 실무역량강화를 위해 엑셀과 워드를 공부했고, 그리고 미국인 친구와 영어 공부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테니스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 미국인 1:1과외, 테니스 1:1 강습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거였네요.


  

                           ▲ 아주머니를 따라 밭 일구기                                                           ▲ 사업 우수지역 워터펌프 전달 후
                                   ⓒ 이상혁 인사이터                                                                               ⓒ 이상혁 인사이터



▲ 첫 물품구매 - 사업장 창고 수동 옥수수탈곡기,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 이상혁 인사이터


▲ 카게지 지역 조합원들과
ⓒ 이상혁 인사이터


한국 사람들은 르완다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나요? 어떤 부분은 잘 남기고 어떤 부분은 또 달리 보는게 좋을 것 같으세요? 


한 번은 마을 주민 중 한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너 한국 집에 돼지 몇 마리 있어?”


“한 마리도 없는데요.”


“그럼 소는?”


“없는데요”


“그럼 닭은?”


“… 없어요 …”


“저런, 불쌍해라.. 너 되게 가난하구나”.


과연 우리는 그들이 최신 스마트폰이 없고, 집에 TV와 에어컨이 없다고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라 판단할 수 있을까요?

빈부의 기준은 결국 나라마다 그 사람들마다 다른 것 같아요. 그들이 집에 가축 한 마리 못 키우는 절 가난하다 했던 것 처럼요.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절대적 빈곤에 생사를 다투는 이들을 돕기 위한 노력과 관심은 마땅한 것이지만, 모든 아프리카 국가와 사람들을 일방적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실제 아프리카는 TV 후원 광고에 비춰진 죽음의 땅, 검은 대륙이 아닌 생동감 넘치고 다채로운 희망을 품은 곳이니까요! 그들은 우리보다 가진 것이 훨씬 많고, 우리가 줘야할 것보다 배워야 할 것들이 훨씬 많답니다!



르완다에서 겪으신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을 나눠주실 수 있나요?


왜 없겠어요! 많은 일들 중에서도 열매나눔 직원들끼리 모여 김장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태어나서 첫 김장을 르완다에서 하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된 것 같아요. 르완다 무는 한국과 다르게 가늘고 길답니다. 그리고, 평소 너무 해보고 싶었던 벽화도 그려보았고, 외국인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한국음식을 대접했었는데 ‘제육볶음’이 가장 인기 있었어요! 제 요리 실력 때문에 그게 그나마 나았던 것일수도 있지만요 ;)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는 여성 인턴과 함께 동네에 사는 100명의 아이들에게 직접포장한 ‘비스킷과 사탕, 캐러멜 꾸러미’를 들고 가가호호 방문하여 나눠주는 자체 이벤트도 진행했었는데요. 특히 현지어로 Noheli Nziza(메리 크리스마스)와 Yesu Aragukunda(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를 집주인에게 배워 아이들과 동네 주민들에게 직접 전하기도 했어요. 


  

▲ 크리스마스 이벤트
ⓒ 이상혁 인사이터



  

                                        ▲ 아직 외국인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                               ▲ 르완다에 김치가 없으면 만들어 먹으면 되지
                                                      ⓒ 이상혁 인사이터                                                                   ⓒ 이상혁 인사이터


▲ 2&5벽화 그리기
ⓒ 이상혁 인사이터


▲ 친구들을 불러 한국음식 해준 날
ⓒ 이상혁 인사이터



마지막으로 이상혁님과 같이 아프리카 지역과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가고 싶어 하시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본인이 가고 싶다는 마음이 1%라도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떠나세요!! 아프리카를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으니까요!! 아프리카를 만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 말입니다. 물론 한국과는 다른 환경에 불편함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도 다 익숙해지고 환경에 맞게 또 살아가게 되더라구요. 오히려, 살면서 너무 불필요 한 것들을 끌어안고 살아왔구나를 느끼게 되죠. 무엇을 챙겨가야할지를 고민하기보다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기대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귀국 후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아프리카에서도 살다 왔는데, 이까짓 것 한 번 해보지 뭐” 이런 배짱이랄까요. 그리고, 피부가 조금 더 하얗고, 머리가 덜 곱슬거린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보면 ‘내가 뭐라고.. 이렇게 좋아해주지..’라는 고마움에 힐링되고, 자존감도 높아지는 경험(너무 심하면 연예인병 걸림)을 하게 될 겁니다!!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딜가나 마찬가지겠지만 바로 ‘건강’입니다. 건강이 기본이 되지 않으면 심리적 육체적 아픔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오더라구요. 해외에 잠깐이라도 나가보신 분이라면 옆에 가족 없는 서러움.. 공감하실 겁니다. 그리움과 서러움의 복합적인 감정이 주는 힘듦도 있지만, 개도국의 절대부족한 의료시설로 인한 육체적 힘듦도 크답니다. 병원의 절대 개체수가 적다보니, 병원까지 이동도 문제고, 가서도 기본 4-6시간은 대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많죠. 결국 ‘아프면 100% 내 손해’ 


<1년간 함께했던 사람들>


▲ 사업장 아이들   

                                                       ▲ 사업장 아이들                                                                     ▲열매 나눔 현지 직원들
                                                     ⓒ 이상혁 인사이터                                                                        ⓒ 이상혁 인사이터



▲ 사무소 직원들
ⓒ 이상혁 인사이터



▲ 협동조합(카게지) 조합원들과 송별회에서
ⓒ 이상혁 인사이터


▲ 세상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지고 감동이었던 마을 주민들이 송별회 선물로 준 옥수수.
ⓒ 이상혁 인사이터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는 여행도 좋지만, 살아낼 때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싶네요!






*본 인터뷰는 <아프리카를 만난 한국인 이야기> 기획 시리즈로

아프리카의 다양한 국가를 경험한 한국인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지원 부탁드립니다. 



<아프리카를 만난 한국인 이야기> 인터뷰 지원하기 : http://bit.ly/1K7MKU5


르완다, 키갈리

Icon tag
아프리카인사이트
아프리카를만난한국인
르완다
열매나눔인터내셔널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