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한] 28회 하얀 세네갈래의 이야기 _ 김은빈 인사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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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4

국가명 : 세네갈(Senegal)

도시 : 기타

세부지명 :

분야 : 경험나눔

주제 : 생활

세부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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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아프리카를 만난 한국인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세네갈에서 봉사단원으로 지낸지 벌써 1년!

이제 1년을 넘어간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는데요.

과연, 김은빈님이 만나신 세네갈 이야기!

지금 바로 확인해볼까요?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현재 하고 계신 일이나 공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봉사단원으로써 세네갈 작은 시골마을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은빈입니다. 대학 2학년때 룸메이트 친구가 탄자니아에서 온 친구였어요. 그 친구의 소소한 아프리카 삶을 듣고 나서, 언젠가 아프리카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었습니다. 50대 이후가 되어서야 올 줄 알았던 아프리카, 지금 이곳에서 저의 주업은 영감님처럼 동네 마실 나가기, 부업은 기술교육원에서 아이들 요리 제과제빵 및 서비스 교육입니다:)



재밌는 표현으로 생활을 말씀해 주셨네요. 그러면 어떤 계기로 KOICA 봉사단을 신청하시게 되셨나요?


대학 생활 내내 파티플래너로 활동하며 자선파티를 기획하며 스텝으로써 참여를 했었어요. 누군가가 즐거운 마음으로 파티를 참여를 하고, 그 파티를 통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나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많은 벽에 부딪혔었어요. 그리고 진지하게 삶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과연 ‘이것이 꿈꿔오던 삶인가, 2,30년뒤에도 이런 삶을 살고 있다면 행복한 것인가, 어떤 의미로써 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 등등이요. 1년간 다이어트 및 체력관리를 시작했고 그 길로 스페인 산티아고 길에 나섰어요. 그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 중 대학 때 꿈꾸고 그려왔던 삶을 실행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간 삶의 변화에 두려움에 도전의 두려움에 머뭇거리던 KOICA 해외봉사단을 신청했고 지금 이렇게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지내고 있답니다. 



거주하시는 나라인 세네갈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세네갈은 아프리카 대륙 중에서도 서쪽 끝자락 사하라 이남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으로 시작됩니다. 그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수도인 다카르입니다. 다카르 옆 엄청 작은 섬이 하나 있는데요, 그곳이 바로 노예무역으로 유명한 고레 섬입니다. 세네갈은 많은 나라에 의해 지배 받았습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프랑스가 잠시 영국에 빌려준 후 곧 다시 돌려받았고 이후 독립을 했답니다. 식민지라는 이유로 어떤 국가의 소유물인 것처럼 빌려주고 돌려받고 한다는 사실이 화가 나면서도, 얼마나 지독하게 지배를 받았을지 조금은 상상해볼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프랑스문화가 많이 지배하고 있고 공산품 역시 유럽산, 주로 프랑스산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언어는 프랑스어가 국가 지정언어이지만 시골로 갈수록 프랑스어보다는 각각의 부족어를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있는 동네만해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답니다. 가장 큰 부족인 월로프, 뿔라, 세레 등 다양한 부족들이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땅이 나뉘면서 부족단위가 아닌, 식민지배 받았던 구역을 위주로 나뉘어지다 보니 이웃국가인 말리, 모리타니, 감비아 등 여러 나라에 비슷한 부족들이 흩어져 있답니다. 이곳 세네갈은 월로프 부족이 가장 컸던 이유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로프어를 기본으로 각자의 부족어, 그리고 프랑스어까지 구사한다고 생각하시며 될 것 같아요.




<고레섬>
ⓒ 김은빈 인사이터




<세네갈래들이 즐겨먹는 쩨부젼>
ⓒ 김은빈 인사이터



수도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많은 탓인지 처음 도착했을 때 꼭 유럽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곳에 오기 전 상상했던 아프리카의 모습이 아닌 꼭 서울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나 레스토랑들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버금가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즐비하답니다. 하지만 수도를 벗어나 외국인들이 많지 않은 지방으로 가면 또 다른 세네갈의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세네갈에 도착한 날 한 레바논인이 운영하는 케밥집에서 케밥을 사먹었는데 한화로 약 7,000-8,000원정도 되는 돈을 지불했더니 친구가 얼른 불어와 월로프어를 익히라며 바가지 썼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7,000-8,000원정도는 매우 저렴한 편이고 보편적으로 레스토랑에서는 한화 10,000-20,000원정도의 돈을 지불하는 것이 보편적이에요. 그만큼 외국인들의 삶은 비싼 물가를 자랑한답니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레스토랑에 가게 된다면 한화 2,000-3,000원정도의 반도 안 되는 금액의 식비를 지불할 수 있어요. 어떤 나라나 그렇듯 외국인으로써의 삶은 외국인 바가지 부가세가 붙는 거겠죠?


처음에는 비싼 택시와 비싼 레스토랑만 이용했었는데 비록 많이 청결하거나 근사한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현지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다 보면 그 세네갈 요리들이 구미가 당겨오곤 한답니다. 생선을 이용한 쩨부젼과 닭고기에 양파소스를 올린 야사뿔레, 땅콩버터를 이용한 마페, 토마토소스로 이것저것 넣어 만든 꼭 리조토 같은 느낌의 다흰을 추천합니다. 대부분의 일상식으로 쩨부젼을 많이 먹고 비싼 닭값 때문인지 야사뿔레 같은 닭요리들은 특별한날 많이들 먹더라구요. 월로프어로 “은데끼”는 아침식사를 뜻하는 데요, 다양한 아침메뉴 중 길거리에서 먹을 수 있는 바게트 사이에 끼워진 오물렛이 있는데 그 맛이 금상첨화랍니다.




<생루이 시장 내 즉석으로 만들어주는 쩨부젼 식당>
ⓒ 김은빈 인사이터



그럼, 세네갈에서 거주하시는 도시는 어디이고, 그곳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구글맵 캡쳐1>




<께베메르의 일몰>
ⓒ 김은빈 인사이터



제가 사는 지역은 께베메르라는 지역입니다. 북적대는 도시보다 작고 귀여운 시골마을에서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께베메르는 수도에서 북쪽(모리타니)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약 3-4시간 후 도착할 수 있는 마을입니다. 큰 도시가 아니기에 보통 수도에서 생루이나 모리타니 국경지대에 가기 위해 스쳐 지나가기 쉬운 마을이에요. 이곳 세네갈래들도 사실 많이 방문하기보다 스쳐 지나가며 아는 곳 정도로 알더라고요. 하지만 의외로 외국인들의 방문이 잦은 편이랍니다. 그 이유는 께베메르를 스쳐 서쪽으로 40-50분정도 향하다 보면 롱뿔이라는 바닷가와 사막이 나와요. 모로코나 이집트처럼 크고 웅장한 큰 사막이 아닌 아주 작은 사막이지만 사막에서 잘 수 있는 롯지도 있고 10분거리의 낙타투어도 있답니다.


사막의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사막에서 10분정도 차를 타고 더 들어가면 대서양이 나옵니다. 바다 이름은 “La plage de Lompoul”입니다. 롱뿔 바다를 처음 갔던 날 몇몇의 꼬마아이들이 낚시를 하고 있더라고요. 길게 실을 늘어뜨리고 생선 조각조각을 꿰어 바다로 뛰어들어가 물고기를 낚는 방법이었어요. 몇분 뒤 이내 아이들이 뛰어나오더니 큰 가오리를 잡았다며 자랑을 하더라고요. 물고기를 팔 생각이 없냐는 저의 질문에 가족들과 함께 먹을 거라며 웃던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습니다.


특히 그 아이가 떠오르는 이유는 저의 국적을 물어보곤 한국이라는 말에 “반기문”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곳 세네갈래들은 한국, 일본, 중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가 않아요. 모든 아시아인을 “시노아”라고 칭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람들도 제가 세네갈에 산다고 했더니 아프리카가 대륙으로써 와 닿는 것이 아닌 한 나라처럼 모두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이들에게도 아시아가 그저 한 나라처럼 중국이라고 생각하는지 중국을 칭하는 신, 중국인을 칭하는 시노아를 많이 쓴답니다. 열심히 중국인이 아니라며 설명하는 저를 보며 다른 한국인들이 안 지치냐고 묻던 것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감비아와 모리타니, 말리, 세네갈이 다르듯, 월로프족, 뿔라족, 세레족이 다르듯 우리도 국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꾸준히 설명하고 있답니다. 적어도 제 주변의 친구들이 더 이상 시노아라고 하지않고 누군가가 시노아라고하면 오히려 나서서 설명해주는 것을 보면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또한 제 친구인 한국인들이 오면 현지 친구들이 “안녕”, “고마워”정도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답니다.




<롱뿔에서 반기문을 외치던 꼬마>
ⓒ 김은빈 인사이터



와, 한국 홍보대사나 다름없군요! 혹시 그 외에 세네갈에서 방문하셨던 지역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세네갈의 북쪽에 위치한 생루이라는 지역입니다. 생루이(St.Louis)의 원래 본명은 은다라(Ndar)입니다. 두 개의 섬과 육지로 이루어진 생루이는 훨씬 예쁜 이름을 가지고도 생루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 현실이 잔혹하기도하고 씁쓸합니다. 사실 생루이는 세네갈의 옛 수도입니다. 프랑스식민지시절 군 물자 수송이 훨씬 편리하고 유용했던 다카르가 수도로 바뀌었답니다. 생루이는 유럽의 옛 시가지를 떠올리게 하는 길들이 많습니다. 다카르만큼 시끄럽고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편의시설도 잘 되어있어 여행하기 참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섬 밖과 두 번째 섬 그리고 첫 번째 섬은 참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요, 섬 밖의 모습은 여느 현지인들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장이 크게 있고 하지만 교통과 길이 잘 되어있어 이동하기가 좋은 편입니다. 첫 번째 섬은 외국인들도 많고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어요. 두 번째 섬은 안쪽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생선을 잡은 배들이 다량의 생선들을 내놓으며 구매하려는 사람, 파는 사람, 많은 어부들로 어촌의 분위기를 연출해 낸답니다. 생루이는 각종 문화 축제들도 많이 열리는 편입니다. 생루이에는 2015년기준 24년째 재즈페스티벌이 개최되어오고 있답니다. 저도 올해 5월 소식을 듣고 재즈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일정상 몇 일씩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풀고 올 수 있었습니다. 너무 신나게 즐긴 탓인지 한 언론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루이 재즈 페스티벌>
ⓒ 김은빈 인사이터




<생루이 재즈페스티벌>
ⓒ 김은빈 인사이터



재즈라니 저도 가보고 싶네요. 그러면, 현지에서 생활 하시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어떤 것인가요?


매 순간순간이 배움이에요. 새롭고 낯선 곳에서 마주한 제 자신의 모습은 뿌듯하고 대견한 부분도 있지만 실망스럽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여행을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었어요. 이곳에 왔었을 때도.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제 자신이 선입견과 편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는 것 발견할 수 있었어요. 이것은 모두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이렇다, 저렇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가 생각한 저의 모습에 대한 이상향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제 스스로 선입견이 적은 편인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더라고요. 물론 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에서는 여전히 많이 부딪히고 있지만, 누가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모두 기준점이 다르니까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여전히 선입견과 편견에 대해 가장 고민스러워하고 아파하며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스스로가 그것을 깨닫고 나니 제 곁에 친구들이 모여 있더라고요. 그 친구들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아요. 한국에서 저는 공동체 생활보다는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었어요. 주변의 몇 안 되는 친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새로운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가졌던 잦은 모임과 파티에서 순수한 관계를 위한 모임보다 이권이나 이익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공동체 생활에 대해 더욱 큰 회의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곳에서 친구들의 순수한 관계형성에 다시 공동체 생활에 대해 배워나가는 요즘이에요.



삶의 중요한 점을 하나 채워가고 계시네요. 그러면 세네갈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요?


세네갈래들도 잘 모르는 아주 작은 소수민족인 saafi-saafi족의 빠삐스라는 친구에요. Diass라는 마을에 사는 친구에요. 지난 여름 처음 그의 집을 방문 했었는데 밤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었었어요. 그날을 인연으로 자주 찾는 나의 멘토이자 리얼 브라더랍니다. 빠삐스는 다양한 일을 하는 친구에요. 노래로, 그림으로, 마음으로 아프리카의 꼬마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심어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로 구성해 각종 음악대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뮤지션으로써 활동도 하고 최근에는 아프리카 음악 어플리케이션 라디오개국을 하기도 했답니다. 빠삐스는 아프리카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이곳 세네갈은 길거리에 쉽게 쓰레기를 버리고 플라스틱이나 타이어를 태우는 등 환경에 대한 인식이 아직 많이 부족한 편이에요. 그래서 정부가 비닐봉지를 못 쓰게 하는 등 많은 정책들을 시작하지만 기존에 박힌 인식을 바꾸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하지만 빠삐스의 동네에 갔을 때 세네갈에서 처음 본 광경들이 많았어요. 동네사람들이 다 같이 말라버린 하천의 쓰레기를 청소하고 있었고 그 옆 한 켠에는 길거리에 나무를 심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어요. 다른 친구에게 설명들은 바로는 빠삐스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명령을 하거나 지시하는 것이 아닌 함께 변화하고 존중하고 섬기는 리더의 모습에 뿌듯하고 자랑스러우면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빠삐스가 들려준 노래 중에 아담과 이브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어요. 아담과 이브가 만나 사랑을 하고 우리는 탄생하게 되요. 그의 자손들에 의해 또 자손이 태어나고 또 태어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몇 가지 색들로 나누어졌고 각 대륙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어요. 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날 빠삐스 집에는 한국인인 저를 포함, 사피족이자 세네갈래인 빠삐스, 월로프족인 세네갈래, 프랑스인, 이태리인이 한자리에 함께하고 있었어요. 빠삐쓰가 말하길 모두 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손이지만 흩어졌고 우리는 다시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저와 프랑스인 친구, 빠삐스가 남아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diass에서 은하수와 함께했던 밤을 그림>
ⓒ 김은빈 인사이터



"빈, 무서워하지 마. 두려워하지 마. 하루 종일 일하고 또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가족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좋겠어. 우리가 왜 휴식을 해야 하는지 알아? 우리는 내일을 또 살아야 하기 때문이야. 내일 만약 우리가 죽는다면 우리는 오늘 휴식을 하지 않고 모든 시간을 소진해버리겠지. 하지만 우리는 내일을 살아야 하고 그 다음 날도 살아야 하고 또 그 다음 날도 살아야 해. 천천히 세상을 둘러봐."


"빠삐스. 정말 너무 고마워 너와 함께한 시간들이 너무 행복해. 이곳에 존재함에 감사하고 너희를 알 수 있어서 행복하고 너희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해. 잊지 못할 것 같아. "


"빈,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 네 것이야. 우리가 만든 시간들이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야. 너와 나 그리고 사무엘이 함께했기에 이 행복을 만들 수 있었어. 나야말로 감사해. 또, 아직 오늘은 너의 최고의 날이 아니야. 너의 최고의 날은 앞으로 다가올 거야. 그날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거든"


제가 빠삐스의 첫 동양인 친구에요. 본인을 무서워하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사피족은 제가 만난 세네갈래들과 조금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사실 세네갈에서 살다 보면 1순위로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것이 “남편 있어?” 혹은 “결혼했어?” 에요. 다르다는 이유에서인지, 외국인과 결혼하고 싶은 욕구들이 있는 것인지, 농담인지, 상상하시는 것보다 자주 질문을 받는답니다. 하지만 사피사피족들은 단 한 명도 제게 결혼을 했는지, 남편이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사피사피족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던 것은 남북관계의 현실에 대한 문제였어요. 그리고 사피사피언어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친분이 시작 되었고요. 재미있는 사실은 사피사피언어에 “안녕”이라는 말이 있다는 거에요. 뜻은 “나야!”라는 뜻이고요. 빠삐스와 통화할 때면 빠삐스의 “안녕!(나야!)”로 시작해 저의 응답인 “안녕!(인사)” 그리고 다시 한번 빠삐스의 인사인 ”안녕!”으로 세 번의 안녕으로 통화가 시작된답니다. 빠삐스의 구전 노래 중에 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전혀 다른 대륙에 대한 관심사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diass에서 전통가옥 까즈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티타임>
ⓒ 김은빈 인사이터



와.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나셨군요. 그러면 반대로, 현지인과 만나거나 함께 일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나요? 


현지인과 일하면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하실 거에요. 물론 의사소통이 매우 힘들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서로의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에요. 의사소통은 사전, 번역기, 바디랭귀지를 통해 어떻게 해서든 소화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서운한 마음도 커지고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많거든요. 특히 한국인의 경우 시간약속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지만 이곳은 사실 한국만큼 약속시간이 잘 지켜지기가 어려워요. 또 인프라가 아직 많이 부족한 탓인지 명절 전후로 출근을 하지 않거나 학교를 나오지 않는 학생과 선생님들이 많아요. 이것은 오랫동안 전해져 온 습관이거나 이들에겐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익숙하지 않는 저에게는 무례한 학생이 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세네갈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하지만 분명 우리도 오랫동안 전해져 온 악습이라던가 우리문화권 밖의 사람에게는 합리적일 수 없는 습관들이 있을 거에요. 그것을 이해하기까지가 너무 힘이 들었었어요.


제 주변에서 듣기론 아프리카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게으름이라고 해요.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상 생각보다 게으르지 않아요. 되려 매우 부지런하죠. 제 주변에 친구들을 보면 바게트를 아침 주식으로 먹는 이곳은 바게트를 굽는 공장이 24시간 돌아가요. 데이근무, 나이트근무로 나뉘는데 친구들보면 새벽1시에 근무를 시작해 그 다음날 오후 13시에 일이 끝난답니다. 다른 친구도 빵집에서 판매원으로 근무하는데 저녁 8시에 시작해 다음날 아침 8시쯤 일이 끝난답니다. 그리고 오후엔 다른 사람들의 집을 청소해주는 일까지 하고 있어요. 한국에도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우 게으른 사람들이 있듯이 이곳도 마찬가지에요.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달라요. 힘이 좋아서 일을 진행할 때 리듬만 찾으면 쉽게 쉽게 해내는 것 같아요. 또 공동체인식이 매우 강하다 보니 협력도 꽤 잘하는 것 같아요. 다만 ‘친구’가 아니거나 ‘내 사람’이 아닌 경우 매우 경계하기도 한답니다. 




<수업시간 학생들과 함께>
ⓒ 김은빈 인사이터



세네갈이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고 예상하시나요?


이건 희망사항이에요. 천천히 지금처럼 서로 함께하는 분위기로써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급하게 성장한 탓인지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지 않잖아요. 때때로 우리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빠른 발전, 신문물, 고급스런 레스토랑과 호텔들이 100%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어요. 그것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누구와 즐기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때때로 SNS나 매체를 통해 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이곳에서 친구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이 몇 가지가 있어요. 그 중에


“나 한국에 일하러 가고 싶어. 한국에서 일하면 돈 많이 벌잖아.”라는 질문이에요. 


그럼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회사생활을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해요. 어릴 때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셨는데 두분 다 일을 하기 위해 자정이 되어서야 귀가하시거나 자정이 넘도록 얼굴보지 못하고 잠들 때가 많았어요. 그리고 새벽엔 각자 출근과 등하교로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들었었거든요. 부모님께서는 최선을 다해 저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 주셨어요. 자정이 다 되어서야 귀가하셔도 새벽4시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곤 한 두 시간 겨우 눈 붙이고 출근하곤 하셨거든요. 하지만 조금 가난하더라도 조금 더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동네에 핸드폰 악세서리 가게를 하는 아마두밤바라는 친구가 있어요. 아들 바바카가 종종 아빠다리에 코알라처럼 붙어선 칭얼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어느 날 아마두도 한국에 일하러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이야기를 해 줬어요. 


"아마두, 네가 그렇게 일하면 너는 바바카와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그래도 괜찮니? 내가 어릴 때 엄마, 아빠 모두 일을 늦게까지 하셔서 집에 나와 내 동생뿐이었어.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시고 아침 일찍 일하러 가셨기 때문이야.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너무 외로웠던 것 같아. 돈이 물론 없으면 힘들지만 돈 때문에 바바카와의 소중한 시간들을 잃지 마. 더 중요한걸 너는 지금 함께 하고 있는 거야. 그래도 네가 한국에 가길 바란다면 비자를 한번 물어볼게. 어떻게 초대할 수 있는지. "


"응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는 바바카를 너무 사랑해. 우리 가족들과 함께 하는 건 참 중요한 시간들이야. "


긴 시간 저를 괴롭혔던 이야기는 나는 누릴 것을 누리면서 왜 그들에게는 천천히 발전하라고 말하느냐라는 문제였어요. 며칠 전 봤던 “울지마 톤즈”에서 이태석신부의 말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어요. 가난해도 행복하고 기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세네갈 친구들이 지금처럼만 살아간다면 함께 행복하고 기쁘게 성장,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봐요. 




<세네갈의 가장 큰 명절이 따바스키날>
ⓒ 김은빈 인사이터



이곳에 오기 전과 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으신가요?


저는 제가 그렇게 나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항상 두려움은 있었지만 두려움과 맞서 싸우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느 날 옆집 꼬꼬마들이 집 앞에서 저를 엄청 부르더라고요. 거의 1년만에 만난 우기철 초반이었어요.


“빈따!!빈따!! 비가와! 빗물에 목욕하자!!”




<빈따 빗물에 목욕하자>
ⓒ 김은빈 인사이터



이 말에 왜 저는 겁이 났을까요. 한국에서는 비를 맞는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잠시 두려움은 뒤로 한 채 아이들과 옥상에서 비를 맞으며 줄넘기도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답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 같아.”


언제나 저에게 있어서 누구보다 용감하고 강인한 분이었기에 저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옆집 꼬꼬마 소피의 빗물에 목욕하자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언제부터 비를 맞고 다니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을까요? 젖은 옷은 빨면 되는 것이고 조금 꿉꿉하고 냄새가 나더라도 샤워하면 다 날라갈 부질없는 것들에 대해 열심히 도 두려워하고 고민을 하고 살았더라구요. 한국에서 저의 삶은 대부분 소비중심의 관계형성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돈을 쓰지 않아도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커서 만나는 친구와 어릴 때 만난 친구는 조금 다르다고요. 어릴 때는 함께 지내는 시간들에 있어서 돈이 필요하지 않았거든요. 함께 할 수 있는 것들로 추억을 만들어 나갔기에 더욱 값진 것이 아니었을까요? 돈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닌 시간을 단지 친구와 우리끼리만 만들어가는 거죠.  한국에서보다 조금 더 인간적인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런 저의 향기가 너무 좋고요.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
ⓒ 김은빈 인사이터



마지막으로 김은빈님과 같이 아프리카 지역과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가고 싶어 하시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나와 다른 사람, 다른 것, 다른 장소를 마주한다는 것은 오묘하면서도 두렵기도 한 것 같아요. 하지만 계속 다름으로 남아져 있다면 그들도 나에게 있어 ‘낯선 이’겠지만 나도 그들에게 있어 ‘낯선 이’가 되요. 관계라는 것은 함께 알아가며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두가 친구가 되고 그 누구보다 든든한 나의 보호자가 되어줄 거에요. 다르다는 생각에 두려움으로 시작하지만 알고 보면 비슷한 문화도 많이 가지고 있는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멀리서 그림으로써 바라보지 마시고 그림 속에 들어가 그림 속의 등장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한가지 꼭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에서는 한없이 예의 바르고 젠틀맨이었던 사람이 이곳에서 현지인에게 쉽게 함부로 하는 경우를 본적이 몇 차례 있었어요. 가난하고 신문물을 많이 접하지 못했지만 이들 또한 긴 시간 살아오며 가지고 있는 지혜가 많답니다. 선진국에서 왔다고 해서 스스로가 지도자가 되거나 이곳을 다스려야 하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종종 봐 왔었거든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에 있는 친구들처럼 똑같이 대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곳을 즐기며 그림 속의 등장인물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본 인터뷰는 <아프리카를 만난 한국인 이야기> 기획 시리즈로

아프리카의 다양한 국가를 경험한 한국인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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