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언어, 그 고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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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9

국가명 : 기타 지역 및 국가

도시 : 기타 지역 및 국가

세부지명 : 아프리카

분야 : 정보공유

주제 : 언어

세부주제 : 언어문제의 역사적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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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이네디터 3기 지식부 기자 이은비입니다. 앞으로 짧은 기간이나마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우고 또 나누려 해요. 오늘은 아프리카의 언어에 대해 얘기할 건데요, 그 중에서도 특히 아프리카가 겪고 있는 언어문제를 역사적 흐름에 비추어 살펴보려 합니다.


아프리카의 언어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한 국가에 서로 다른 수많은 언어가 혼재하는 것, 둘째 토착어가 억압받고 소외되어온 것, 셋째 공용어가 아프리카적 정체성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 그렇다면 이러한 아프리카의 언어문제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지금부터 차근차근 짚어볼게요!





 
1. 베를린 회의(1884): 다양한 언어권이 일방적으로 병합되다


▲베를린 회의에서 아프리카 분할을 논의하는 모습 

©Wikimedia Commons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베를린 회의였습니다. 콩고분지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시작된 이 회의는 결과적으로 유럽 제국주의 열강끼리 아프리카 ‘나눠먹기’를 공식화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 때 아프리카의 서로 다른 다양한 종족의 문화적 경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오로지 유럽열강의 편익을 위한 정치·외교적 경계에 따라 국경선이 정해졌습니다.1) 이러한 강제적 영토 구획으로 수많은 상이한 언어종족들이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영어권 아프리카’ 등으로 억지로 뭉쳐지면서 한 국가에 수많은 언어가 복잡하게 얽혀있게 된 거죠.






2. 언어식민주의: 토착어 억압·소외가 본격화되다


이후 식민정부들은 지배와 착취의 편의를 위해 아프리카에 그들의 언어를 일방적으로 이식했고, 그 결과 토착어는 권력 및 교육과 같은 사회 인프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토착어 사용을 제한하고 차별하며 그 열등함을 선전하는 언어정책을 펼치기도 했는데요,2) 이는 자연스레 토착어의 자신감과 정체성을 훼손시켜 존립의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이처럼 언어 권력을 내세워 식민지의 경제적·물질적 종속뿐만 아니라 사상적·정신적 종속까지 꾀하는 언어식민주의의 본질을, 케냐의 초대 대통령인 조모 케냐타(Jomo Kenyatta)는 다음과 같은 날카로운 비유로 지적한 바 있죠.


▲Jomo Kenyatta

 ©Wikimedia Commons


“When the Missionaries arrived,
the Africans had the land and the Missionaries had the Bible.
They taught how to pray with our eyes closed.
When we opened them,
they had the land(종주국의 물질적 이득) and we had the Bible(종속국의 정신적 종속).”



이렇게 언어식민주의의 억압과 소외로 토착어는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3. 공용어 정책: 아프리카적 정체성 구현에 실패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공용어 현황을 나타낸 지도

©Wikimedia Commons


독립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식민지배로 훼손된 그들의 아프리카적 정체성을 재건하는 일이었어요. 언어가 문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아프리카적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는 공용어 설정문제도 함께 부각되었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프리카적인 국가정체성을 쌓는 데 실패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대다수 국가들이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식민정부의 공용어를 그대로 유지했던 탓입니다. 토착어는 대부분 미발달 상태라서 교육에 적합하지 않고, 발달에도 비용이 많이 들며, 국제사회 참여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중립적인 유럽어와 달리 토착어간의 경쟁을 불러오므로 다양한 종족을 아우르지 못하고 사회 통합을 저해하기 때문이었죠.3) 이와 같은 공용어 정책은 분명 실용적이고 경제적이지만, 이전의 언어 권력구조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아프리카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제리의 초대 대통령 Ahmed Ben Bella와 2대 대통령 Houari Boumediene

©Wikimedia Commons


또한 흥미롭게도 알제리의 경우,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과 극렬한 저항심을 바탕으로 그들의 고유어인 아랍어를 공용어로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적 정체성 확립에 실패했습니다. 알제리 민족주의자들이 내세웠던 아랍어가 대중들이 널리 쓰던 ‘아프리카적’인 ‘알제리 아랍어’가 아니라, 이슬람 고전어인 ‘쿠란 아랍어’였기 때문이죠.4) 알제리 대통령 아메드 벤 벨라(Ahmed Ben Bella)와 우아리 부메디엔(Houari Boumediene)은 ‘쿠란 아랍어’가 아닌 ‘알제리 아랍어’ 및 ‘베르베르어’ 같은 고유어를 가혹하게 탄압하기까지 했습니다.5)



▲Julius Nyerere

©Wikimedia Commons


물론 예외적으로 아프리카적 정체성 구현에 성공한 나라도 있는데요, 바로 영어와 함께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탄자니아입니다. 초대 대통령 줄리어스 니에레레(Julius Nyerere)는 반투어에 바탕을 둔 스와힐리어의 아프리카적 정체성에 주목했을 뿐만 아니라, 스와힐리어 연구와 개발을 통해 실용성 보완에도 힘썼습니다.6) 이를 통해 탄자니아는 다양한 종족을 아우르면서도 이전의 언어 권력구조에서 자유로운 ‘아프리카적’인 스와힐리 정체성을 새롭게 구현해낼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언어문제와 그 역사적 원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도 이 언어문제는 아프리카의 속을 썩이며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데요, 그런 만큼 우리도 꾸준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참고

1) 김병욱, 언어식민주의와 아프리카의 언어 수용 양상 -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의 이해를 위한 접근, 한국프랑스학논집, 79, 한국프랑스학회, 2012, 9쪽
2) 위와 같음, 13-14쪽
3) 위와 같음, 13쪽에서 재인용
4) 김병욱,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의 언어문제 - 토착어, 언어민족주의와 공용어 편력 사이, 한국프랑스학논집, 89, 한국프랑스학회, 2015년 204-205쪽
5) 위와 같음, 205-208쪽

6) 장용규, 동부 아프리카의 언어정책과 스와힐리 정체성의 형성, Asian Journal of African Studies, 15,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2002년, 20-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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