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문학, 한-아프리카 연대의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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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국가명 : 나이지리아(Nigeria)

도시 : 라고스(Lagos)

세부지명 :

분야 : 정보공유

주제 : 문화

세부주제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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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캐나다의 마거릿 애트우드와 함께 올해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점쳐졌던 케냐의 응구기 와 티옹오(Ngũgĩ wa Thiong’o)를 아시나요?


Ngũgĩ wa Thiong’o ⓒNiccolò Caranti


바로 이 분입니다. 비록 수상은 불발에 그쳤지만 배당률 1위로 매우 저명한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포함해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마 생소한 이름이었을 겁니다. 사실 그는 원래 ‘제임스 응구기(James Ngugi)’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었는데요, 도대체 어떤 이유로 굳이 한층 더 생소한 ‘응구기 와 티옹오’가 된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오늘 얘기해 볼 내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응구기를 비롯해 세네갈의 셍고르, 나이지리아의 오카라 등 매력적인 작가들로 가득한 아프리카 문학에 대해 알아봅시다!






아프리카’ ‘문학인가?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왜 하필 ‘아프리카’에, 그 중에서도 특히 아프리카의 ‘문학’에 주목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먼저 ‘아프리카’와 관련해서, 현재 한국에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문학에까지 그 관심이 이르기는커녕 50여개 국가들을 도매금으로 묶어 주로 부정적 이미지만을 덧씌우고 재생산하고 있습니다.1) 따라서 우리가 만들어낸 편견어린 아프리카에 대한 책임감의 발로에서라도 ‘아프리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문학을 통한 연대 ⓒPixabay


더 나아가 그 중에서도 특히 아프리카의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문학을 통해 한-아프리카 연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한 사회의 시대적 과제와 고민, 희망과 미래상까지 담아내는 정신문화의 정수입니다. 그렇기에 마치 한국의 근·현대문학이 일제강점이라는 현실을 소화하고 대응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듯이, 아프리카의 현대문학도 식민지배와 그로 인한 폐해를 진단하고 저항하는 데 천착합니다. 따라서 ‘아프리카 문학’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식민지배라는 동질적인 역사적 경험에 기대어 감정적 유대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비교와 대조를 통해 서로의 논의를 더욱 풍부히 할 ‘연대의 끈’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언어로 쓸 것인가


어떤 언어로 쓸 것인가 ⓒFlickr


이러한 식민지배 경험의 맥락 속에서, 아프리카 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어떤 언어로 쓸 것인가’, 즉 문학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입니다. 유럽의 언어와 서구식 교육을 강요해 아프리카 국가들을 문화·제도적으로 유럽 국가들에 의존하게 만드는 언어식민주의 전략의 영향으로, 아프리카 사회는 독립 이후에도 공식어로 식민종주국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문학계의 창작 활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내용적으로는 식민잔재의 영향에서 벗어난 아프리카만의 독자적인 정체성 및 자신감의 회복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형식상으로는 식민종주국의 언어구조를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점차 아프리카 문학이 세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하고 그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짐에 따라, 유럽의 언어를 사용한 작품에 대한 비판과 회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63년 나이지리아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오비 왈리(Obi Wali)는 ‘아프리카 문학의 막다른 끝(The Dead End of African Literature)’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진정한 아프리카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식민종주국의 언어가 아닌 아프리카 현지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2) 국내외 소통의 어려움이라는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아프리카의 현지어를 통해서만 식민주의에서 탈피해 주체적인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와 같이 아프리카 현대문학에 있어 ‘어떤 언어로 쓸 것인가’의 논쟁은 ‘소통’ 대 ‘정체성’을 두 축으로 하여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의 작가 치누아 아체베 ⓒStuart C. Shapiro


나이지리아의 비평가 니이 오순다레(Niyi Osundare)는 이러한 문학 언어의 선택과 관련해 세 가지 유형을 제시했습니다.3) 첫째는 세네갈의 레오폴 셍고르(Léopold Sédar Senghor)처럼 식민종주국의 언어에 노골적으로 의존하는 ‘순응주의자’들이고, 둘째는 앞서 말했던 나이지리아의 오비 왈리나 케냐의 응구기 와 티옹오처럼 아프리카의 언어만 사용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급진주의자’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이지리아의 치누아 아체베(Chinua Achebe)와 개브리얼 오카라(Gabriel Imomotimi Okara)를 포함해 가장 많은 작가들이 속한 ‘점진주의자’ 유형은, 유럽어의 탈식민화와 재아프리카화를 통해 ‘소통’과 ‘정체성’의 두 축 모두 잃지 않으려는 중도적 입장을 취합니다. 각 유형별로 흥미로운 작가 한 분씩을 소개해드리며 심도 있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세네갈의 셍고르(Léopold Sédar Senghor): 프랑스어의 보편적 휴머니즘4)


레오폴 셍고르 ⓒWikimedia Commons


셍고르 식민지 동화정책과 유럽의 우월의식에 대한 반발로 아프리카 흑인만의 가치 있는 문화적 유산을 발굴하고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했던 ‘네그리뛰드(Négritude)’ 운동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를 찬양했으며 오로지 프랑스어만을 사용해 작품 활동을 했고 토착어 활용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에 대해 비판받아왔습니다. 사실 아프리카적 정체성을 구현한다면서 프랑스어에만 매몰된 그의 행태는 일견 모순적으로 느껴질 여지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셍고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어는 시적 어휘가 풍부하고 국제적으로도 통용되는 언어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아프리카의 문학 활동에 더 적합한 언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본질적으로, 그는 아프리카적 정체성과 문화가 아프리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서구문화와의 협력 및 공유를 통해 하나의 보편적인 인간성, 휴머니즘을 형성해나간다고 보았습니다. 즉 그는 서구 문화의 “명료함, 이성적 사유, 데카르트식의 구분”이 흑인문화의 “리듬, 삶, 에너지”와 만나 서로 협력하여 보편적인 휴머니즘을 이룰 것이라는 긍정적인 미래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문학 활동에 있어 프랑스어를 적극 사용했습니다.


당신은 왜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가?
왜냐하면 우리는 문화적 혼혈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흑인으로 느끼더라도 프랑스어로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는 보편적 사명을 띤 언어이기 때문이다.






(2) 케냐의 응구기(Ngũgĩ wa Thiong’o): 기쿠유어의 탈식민성5)


응구기의 첫 기쿠유어 작품인 『결혼하고 싶을 때 결혼해요』 (Ngaahika Ndeenda, 1977), 응구기 와 미리(Ngũgĩ wa Mĩriĩ)와의 공저.


반면 응구기는 언어 선택과 관련한 논쟁이 불거졌을 때, 앞으로는 작품 활동에 영어가 아닌 기쿠유어(Gĩkũyũ)만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유럽어는 식민통치의 잔재로서 아프리카인들의 정신을 통제하고 있으며 곧 사회·경제적 통제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꼭 탈피해야만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아이야 울지 마라』 (1964), 『사이로 흐르는 강』 (1965), 『한 톨의 밀알』 (1967) 등 유수의 ‘영어’소설을 발표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제임스 응구기(James Ngugi)’는, 비로소 ‘기쿠유어’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Ngũgĩ wa Thiong’o)’가 되었던 것입니다.



응구기는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농민과 노동자에 주목하게 되었다. ⓒPixabay


이러한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는 1976년 고향 카미리수(Kamirithu)에서 지역주민들과 연극 공연을 했던 일이었습니다. 카미리수 주민들이 기쿠유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쿠유어로 된 희곡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는 독자들을 고려해 언어를 선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즈음 응구기는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아, 문학을 계급투쟁의 구도를 밝히고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도구로서 여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작품의 타겟을 영어에 능숙한 사회지도층과 지식인이 아닌 기쿠유어만을 주로 사용하는 농민과 노동자로 선회할 필요성을 명확히 느끼게 되었는데요, 다음의 언급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납니다.


케냐 작가가 영어로 글을 쓴다면 그 내용이 아무리 극단적이라 하더라도
케냐의 농민이나 노동자에게 다가가거나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Oral Tradition, From The New York Public Library


또한 응구기는 기쿠유어 작품을 통해, 유럽의 문학전통에서 탈피해 아프리카 고유의 구연문학 전통을 되살리고 실천적으로 계승하는 데 주목했습니다. 그는 1986년의 저서 『정신의 탈식민지화』 (Decolonizing the Mind)에서 셍고르와 같이 식민종주국의 언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것은, 결국 식민종주국의 문학전통에 편입되어 이를 더 다채롭고 풍부하게 해 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십자가 위의 악마』 (Caitaani Mutharabaini, 1980)에서는 기쿠유의 구연시인을 화자로 등장시키고, 『마티가리』 (Matigari ma Njiruungi, 1987)에서는 기쿠유 구연민담을 바탕으로 삼는 등 구연문학 전통을 이어가려 노력했습니다. 또한 흥미롭게도 응구기의 기쿠유어 작품은 실제로 집단적 감상을 통해, 즉 한 명의 이야기꾼이 읽어주면 문맹자를 비롯한 다수가 듣는 구전 형태로 향유됨으로써, 그 자체로 아프리카 구연문학 전통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언어 선택에 대한 응구기의 가치관은 다음의 발언으로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


나는 케냐의 언어이자 아프리카의 언어인 기쿠유어로 글 쓰는 것이 케냐와 아프리카 민족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의 일부라고 믿는다…
나는 케냐의 어린이들이 제국주의자들의 강요에 의해 자신이 속한 사회와 역사를 통해 개발된 의사소통 도구를 경멸하면서 자라기를 원치 않는다.









(3) 나이지리아의 오카라(Gabriel Imomotimi Okara): 이조어와 영어의 혼성 및 전복6)


『The Voice』 (1964)


한편 오카라는 식민종주국의 언어인 영어를 사용하면서도, 매우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아프리카적 정체성을 구현해냈습니다. 바로 토착어인 이조어와 영어의 혼성을 통해 영어의 탈식민화 및 재아프리카화를 유도한 것인데요, 소설 『The Voice』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기존의 작가들이 단순히 토착어의 관용적 표현 등을 영어로 쓴 글 속에 차용하는데 그쳤던 것에 반해, 오카라는 더 나아가 ‘축어적(逐語的) 번역’을 통해 적극적인 영어의 해체를 꾀했습니다. 축어적 번역이란 간단히 말해 번역어를 기계적으로 대응시켜 치환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마치 “그건 식은 죽 먹기야!”를 “That's a piece of cake!”가 아닌 “That's cooled down porridge eating!” 정도로 번역하는 것과 같습니다. 『The Voice』의 한 구절을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I could have been a big man ⓐbe, … if ㉠the straight thing I had not spoken, if the straight thing I had not done. But I have a ㉡sweet inside and ⓑclean as ㉢the eye of the sky.”

이 구절의 뜻은 “내가 옳은 것을 말하지 않고 내가 옳은 것을 행하지 않았다면 나는 큰 인물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순수한 마음을 가졌고 맑은 하늘처럼 깨끗하다.”인데요, 아마 읽으면서 여러모로 어색함을 느끼셨을 겁니다. 그 이유는 이조어의 축어적 번역에 의해 영어의 통사구조가 무시되어 결국 이조어도 영어도 아닌 혼성적인 언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먼저 ㉠의 ‘the straight thing’은 ‘옳은 것’을 뜻하는 이조어 명사구의 각 단어를 기계적으로 번역해 치환한 어구로서, 이조어를 모르는 영어권 화자의 경우 굳이 해석은 할 수 있겠지만 맥락상의 구체적인 진의를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각각 ‘순수한 마음’과 ‘맑은 하늘’을 의미하는 ㉡의 ‘sweet inside’와 ㉢의 ‘the eye of the sky’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의 뜬금없는 ‘be’, 그리고 앞의 have와 호응하지 못하는 ‘clean’의 출현은 모두 이조어의 통사구조에 단어만 축어적으로 번역한 결과이며, 역시 영어권 화자가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위계질서의 해체와 전복 ⓒPixabay


이러한 사례들은 분명 표준 영문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이조어 사용자들에게는 오로지 그들만을 위한 문화적 함축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앞서 말한 “That's cooled down porridge eating!”이 영어로는 매우 어색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식은 죽 먹기’라는 관용어를 아는 한국어 사용자들에게만은 도리어 의미가 직관적으로 잘 전달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혼성적 표현 하에서는, 기존에 사회적인 우위를 점하던 영어가 이조어의 통사구조에 봉사하는 도구로서 전락하게 되는 위계질서의 전복이 발생합니다. 결과적으로 오카라의 언어적 혼성 전략은 언어적 위계질서의 판을 흩뜨려 놓음으로써, 아프리카 문학의 탈식민지화를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을 통한 한-아프리카 연대의 길


대구지방법원의 창씨개명 공고 ⓒWikimedia Commons


이토록 통쾌한 오카라의 언어적 전복에 대해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떠오른 것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일제강점기의 ‘창씨개명거부운동’입니다. 1940년 총독부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조선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했는데, 그 중 일부는 창씨개명을 하되 그 속에 풍자와 조롱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름을 ‘견자웅손(犬子熊孫)’, 즉 ‘개자식이 된 단군의 자손’이라고 짓거나 ‘견분식위(犬糞食衛, 이누쿠소 구라에)’, 즉 ‘개똥이나 먹어라’라는 뜻으로 짓기도 했고, 심지어 한 농부는 ‘병하(炳夏)’라는 이름에 ‘전농(田農)’이라는 창씨를 붙여 일본어로 천황을 의미하는 ‘덴노헤이카(天皇陛下)’와 같은 발음으로 만들려고 하다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7)
비록 구체적인 양상은 다를지라도 다양한 언어유희를 통해 일본어 이름이라는 외피 속에 조선인으로서 풍자와 조롱의 알맹이를 담아내려는 언어적 전복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오카라와의 유사성, 더 나아가 일종의 연대감이 어렴풋이나마 느껴지시지 않나요?



십자가 위의 악마 / 응구기 와 티옹오 / 창비 / 2016.10.10.
                                                         

한편, 작년 박경리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응구기는 한 강연에서 그의 기쿠유어 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가 우리나라 작가 김지하의 「오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글이라고 밝혔습니다. 1976년 일본의 서점에서 우연히 김지하의 『민중의 외침』 영어판을 산 그는 사회에 대한 관심, 그리고 구어의 형태 및 민중적 특징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에 매료되었습니다. 이후 케냐에 김지하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억압적 정치문화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으며, 특히 수감생활 당시 독방에서 김지하의 정신과 함께하며 줄거리의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8)



연대 ⓒPixabay


이처럼 문학은 개인적인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유대감을 부여하는, 또 서로 간의 비교·대조를 통해 각자의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연대의 훌륭한 매개체입니다. 물론 우리는 저명한 작가도 외교관도 아닌 평범한 개인이기에 ‘연대’라는 거창한 단어가 다소 버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아프리카와의 연대의식을 가꿔나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단지 꾸준히 그들의 문학을 읽고 즐기는 것이 아닐까요.


이상 아이네디터 3기 지식부 기자 이은비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출처
1) 예컨대 아프리카미래전략센터에서 초·중·고 사회과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아프리카 관련 내용은 그 빈도가 낮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왜곡된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
2) 박정경, 아프리카문학에 있어서 언어 선택의 문제 : 응구기 와 띠옹오(Ngugi wa Thiong'o)를 중심으로
, 한국아프리카학회지, 22, 한국아프리카학회, 2005, 55쪽
3) 장태상, 개브리얼 오카라 : 아프리카 소설의 정체성과 언어적 실험
, 한국아프리카학회지, 44, 한국아프리카학회, 2015, 255쪽에서 재인용.
4) 김병욱,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의 언어관 :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의 언어 문제에 대하여, 한국프랑스학논집, 75, 한국프랑스학회, 2011, 1-21쪽 요약·참고

5) 박정경, 위와 같음, 53-73쪽 요약·참고
6) 장태상, 위와 같음, 245-268쪽 요약·참고
7)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
8)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0/25/02...

이미지
https://books.google.co.kr/books/about/I_Will_Marr...
https://digitalcollections.nypl.org/items/510d47d9...
https://books.google.co.kr/books/about/The_Voice.h...
https://ko.wikipedia.org/wiki/%EC%B0%BD%EC%94%A8%E...#/media/File:Japanese_Name_Change_Bulletin_of_Taikyu_Court.jpg



※ 위 기사내용은 아프리카인사이트의 입장과는 무관한 기자 본인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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